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라기 Jul 21. 2021

폭염에 꼭 필요한 주방 도우미

스피드 한요리를 위한 아이템




딸그락, 딸그락, 피-


"딸그락, 딸그락, 피-"

소리가 요란하다. “불 조절해라.” 빨래하던 엄마의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언제쯤 불을 줄여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 불을 꺼야 하는지 아직 낯설다. ‘어휴, 또 나야!’ 엄마는 맨날 오빠 두고 나만 시킨다. 투덜투덜 불을 줄였다. 갓 지은 밥 냄새가 고소하다. 작년에 큰 맘먹고 구매한 풍년 압력밥솥은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주방 도구다. “정말 밥맛이 좋지 않니?” 아침저녁으로 알람 소리처럼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밥만 해주는 밥솥이 뭐가 그리 좋을까?’ 이해되지 않았다.     



결혼 선물로 받은 전기밥솥이 수명을 다했다. 수리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미련 없이 처분했다. 최신 전기밥솥 대신 압력밥솥을 구매했다. 낯설 거 같았던 압력밥솥에 밥을 짓는다. ‘치칙치 칙’ 기차 소리가 친근하다. ‘피-’ 김이 모두 빠진 걸 확인하고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솥에서 나오는 연기가 안개같이 눈앞을 가렸다가 바람처럼 쓱 사라진다. 촉촉하고 땡땡한 밥알이 한 알 한 알 살아 있는 듯하다. “밥맛이 달라진 거 같지 않아요?” 남편에게 물었다. 순간 움찔했다. 오래전 엄마가 했던 말을 하고 있다. 잘 모르겠다는 남편의 답이 속상하다. ‘아니,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그 시절 엄마 마음이 이해됐다.     







압력솥은 주방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묵은 김치 위에 돼지고기 목살을 듬뿍 넣고 매실을 살짝 넣었다. 오랜 시간 끊여야 더 맛을 내는 김치찜을 짧은 시간 끝냈다. 자른 닭과 적당하게 썬 감자, 양파, 당근을 넣고 양념을 넣은 후 압력을 가한다. 감자는 포근포근, 양파는 야들야들하게 금방 변신한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닭볶음탕 완성이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며 재촉할 때도 압력솥 도움을 받는다. 10분이면 촉촉하고 땡땡한 밥을 내준다. 푹 끓여야 맛이 좋은 쇠고기 뭇국과 미역국, 배춧국도 압력을 가한 후 김을 빼고 나면 오랜 시간 끊인 것과 같은 맛을 낸다. 우리 집 손이 빠른 주방 도우미다.  특히나 무더운 여름날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주방 도우미는 몇 분이면 밥이 끝난다고 말을 못 한다. ‘취사가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말도, ‘취사가 완료되었다’라는 말도 못 한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승처럼 매일 묵묵하게 찰진 밥을 내줄 뿐이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까짓 거 대수냐며 뚝딱뚝딱 끝내준다. 압력솥은 요리하기를 즐기지 않았던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주방 도우미다. 어느 순간 없어서는 안 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주방 도구가 되었다. 사용한 지 10여 년이 넘어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 것에 미안하다. 

오늘도 고마운 마음 담아 압력솥에 밥을 짓는다.     




작가의 이전글 그곳에서의  하룻밤 - 담양 죽녹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