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 담양 죽녹원
자동차 시동이 꺼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본다. 뜨겁게 내리쪼이던 태양은 대지의 끝에 다다랐고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하늘을 덮을 준비를 하고 있다. 피곤을 떨쳐내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며 차에서 내렸다.
"여기, 어디야?"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남편을 쳐다본다.
"담양 온다고 했잖아"
일을 마치고 주말 바람 쐬러 가자는 신랑의 말에 차에 올랐고 이곳에 도착했다. 거짓말 같다. 여기가 2021년 담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어느 부잣집 도련님 댁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정갈하게 다듬어진 정원과 금방이라도 멋스러운 한복을 차려 입고 인사를 건넬 선비가 나올법한 한옥 집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멋을 내기 위해 지은 집과는 달랐다. 양반집 대문 문을 열고 들어선 느낌이다. 멋들어진 한옥들은 자신의 위엄을 뽐내며 당당했다.
‘죽녹원’
어둠 속에서 입구의 안내판을 겨우 읽어 내려갔다. 예약 확인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입구에 들어섰다. 준비된 전기차에 올랐다. 광활한 마당을 지난다. 미등 속에서 초록 잔디의 정갈함이 살짝 모습을 비춘다. 시원한 저녁 바람은 오르막을 달리는 차 안으로 전해진다.
‘영빈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채의 한옥들이 무심한 듯 떨어져 있다.
‘엄마, 우리 여기서 자는 거예요?’
고풍스러운 한옥의 자태에 넋이 나가 바라본다. 정갈한 한옥의 모습에 압도되어 흥분된 아이들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작고 아담하다. 삐그덕 소리가 입구의 문을 열었음을 말해준다. 거실은 단아하다. 시원한 바닥에 누웠다. 듬직한 나무 기둥이 대들보와 도리를 받치고 있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단단한 석가래는 고풍스러움의 깊이를 더해 준다. 멋있다. 멋있어라는 말을 옹알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나뭇잎의 하늘 거리는 소리와 한지 사이로 그윽한 빛이 비추일 때 아침을 느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양반집 규수가 문을 열듯 거실 창문을 힘차게 밀어낸다. 마당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아침 햇살을 벗 삼아 아이들과 산책길로 들어선다. 철학자의 길, 운수 대통의 길, 사랑의 길, 사색의 길, 선비의 길 등 8개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철학자의 길을 지나 선비의 길로 들어섰다.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살면서 이런 길은 처음이다.
대나무 숲길. 길 좌우에는 하늘을 갈망하는 대나무들이 옹기종기 치밀하고 질서 있게 정열 되어 걸어가는 길마다 병풍이 되어 주었다. 아침의 높은 습도에도 불구하고 시원하다. 산소 발생률이 높아 밖의 온도보다 4도 정도 낮다고 한다. 댓잎을 통과하는 바람의 청량감에 기분은 상쾌하다. 운수 대통길의 쉼터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대나무 잎에 가려진 하늘빛이 아른아른하다. 긴 칼 옆에 찬 무림의 고수들이 대나무를 박차고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아올라 공중에서 멋진 한판 승부를 보여줄 것만 같은 곳이다. 일지매의 촬영지였다는 안내문에 머릿속 언저리에 머물던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라는 생각에 실소한다.
'여기는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이래, 애들아, 이곳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사랑은 영원하데, 그럼 우리 사랑도 영원한 거야?'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2시간 가까운 산책을 마쳤다.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태양의 눈부심은 대나무의 빽빽함에 가리어졌다. 담양에서만 즐길 수 있는 죽림욕. 다시 꼭 찾아오고 싶은 추억의 장소가 될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볼거리. 즐길거리
- 죽녹원을 산책하며 대나무 숲에서 아이들과 인생 사진 찍기
- 죽녹원 카페에서 차 한잔
- 5분 거리의 메타세쿼이아 길 산책
- 메타프로방스 마을 탐방
- 이이남 아트센터 (죽녹원 안)
먹을거리
- 국수거리에서 국수 먹기
- 프로방스에서 빵과 아이스크림 먹기
- 담양 떡갈비와 대나무 통밥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