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책 : 숨결이 바람 될 때 -
북서쪽으로 난 병실의 창을 통해 따뜻한 저녁 햇살이 비칠 때쯤 폴의 숨소리는 더 조용해졌다. 그의 몸은 편안해 보였고, 팔다리도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폴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떠나갔다. 가족들의 곁을, 자신이 몸담았던 삶의 순간들을….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어 흘러갔다. 이 책의 저자인 폴은 영문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생물학과 철학, 과학에 관해 공부하던 중 의사가 되게 된다.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문과생이 의사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이 철학적이다.
신경외과 의사로 자리를 잡을 즈음 암을 발견하게 된다. 의사가 본인의 차트를 바라보는 장면이 담담하게 소개된다. 환자의 생명에 관여하던 의사가 자기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치료를 결정하고 약물치료로 암에 대한 경과가 좋아졌을 때 나는 몇 년 더 살게 되나 보다 하고 좋아했다. 시한부 인생이지만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어쩜 우리 모두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암은 전이된다. 다시 끔찍한 치료를 직면해야 했다. 약물치료가 어떤 것인지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그런 와중에서도 아내 루시와 임신과 출산을 준비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폴이 딸과 몇 살까지 살았을까? 딸이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까지였으면 좋겠다. 하고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긴장하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8개월이었다. 짧다. 8개월의 시간 동안 케이디 때문에 폴이 살아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걸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딸에게 쓴 마지막 편지를 보며 눈물이 났다. 암과의 전투 중에도 딸과 보낸 시간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자신의 하루하루를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아내 루시는 폴의 마지막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적어주었다. 슬픔이 절제되어 있다.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자신의 배우자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것으로 자신의 몫을 감당한다. 루시가 새롭게 보였다.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죽음을 앞에 둔 남편을 바라보는 루시는 강건해 보였다. 루시가 바라본 죽음은, 루시가 경험한 죽음은 절망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내기 만약 남편을 먼저 보내게 된다면 루시같이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결이 바람 되어...」는 폭염 속에서 아이들과 뜨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다. 나의 죽음은 언제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여러 생각 속에 빠져본다.
우리 모두의 숨결은 언젠가 바람이 될 테니까...
아이와 나눈 내용
1. '죽음'이란 단어를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어?
2. 엄마가 죽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 거 같아?
3. 엄마의 죽음을 이렇게 바라봐 주면 좋겠어.
4. 엄마보다 네가 먼저 죽는 다면 엄마가 어떻게 해 주길 원해?
5. 죽기 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6. 주인공 폴처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뭘 하고 싶어?
7.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것이 가장 후회될 것 같아?
*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죽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이들이 읽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초등 고학년 둘째가 먼저 읽고 있습니다. 읽고 나면 아이에게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라라 프로젝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비밀 책방 4기 - 후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