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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Oct 04. 2021

'정해인이 좋~소'를 외치는 그곳 #1

아이와 함께 보는 세상 (여행) - 남도 여행 :  강진 사의재



달리고 또 달리고 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동차는 어느 한적한 마을 주차장에서 멈춰 섰다.

반짝이던 나뭇잎들은 저녁노을과 함께 잠들었고, 저녁 서늘한 바람은 조용하고 잔잔한 마을의 공기를 전해 주었다. 난 또 어느 곳에 와 있는 걸까? 잠들었던 아이들을 깨우며 남편에게 묻는다.

"여긴 어디예요?"

"강진"


강진? 강진? 음.. 어디더라... 위치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강진이라는데, 남한 지도의 어디던가... 검색해서 강진의 위치를 알아본다.

'남쪽으로 한 참 내려왔네..' 차에서 오는 내내 잠들어서 몰랐다.


"여긴 어디예요?" 아이들도 묻는다. 남쪽 강진이라고 이야기해주며 찾던 지도를 보여 주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여기저기 다니기에 익숙해진 아이들도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고 차에 오르는 경우들이 많다. 학교 끝나자마자 출발했고 차에서 내내 잠들어 있었으니...


"오~ 한옥이네요?" 지난번 죽녹원에 이어 또 한옥 마을 앞에 아이들이 서 있다.

"근데 분위기는 좀 다르네요"


"정약용 알지? 애들아 여기가 정약용 선생이 유배되었을 때 묵던 주막이래"

"그럼 우리 주막에서 자요?"

"아니 주막 자리를 한옥으로 만든 거지..."


[ 사 의 재 ] 이곳의 이름이었다.

입구에 사의재기 [四宜齋記]라는 명판에 글이 쓰여 있다.


『 사의재라는 것은 내가 강진에 귀양가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나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나 장엄하지 않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이 방 이름을 붙어 사의재 四宜齋라 한다.

    마땅하다 [宜]라는 것은 의롭다 [義]라는 것이니 이로 제어함을 이른다.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 바

    학업이 무너져 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


글을 읽는데 시선이 계속 머문다.

'맑은 생각, 단정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 이 네 가지를 이야기하는구나...'

글을 읽어 내려가며 다산 선생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한자가 발명된 이래 최고의 사상가로 손꼽히던 다산. 정약용.

"그대 밖에 없다. 문장에서도 그대 능가할 자 없고,

 100년 만에 재상 재목. 그대밖에 없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가고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이 시작된다. 이때 정순대비의 천주교도를 일망 타진하겠다는 결의로 수 많은 천주교인들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천주교의 탄압이 극에 달할 때 천주교인으로 낙인 찍힌 정약용은  당대 최고 석학의 위치에서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가문과 마주하게 된다. 가족과는 생이별하게되고 대역죄인으로 내몰린 형, 형수, 매형, 조카들은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정약용은 또 다른 형인 정약전과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당대 최고의 석학의 위치에서, 임금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충신의 위치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동짓달 북풍한설 몰아치던 겨울이었다고 한다.

모진 고문으로 갈기 갈기 찢긴 몸과 가족에 대한 염려로 동작나루터를 떠나 귀양길에 오른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곳에 오니 정약용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 하다. 


차디찬 바람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배신과 절망이 그를 더 고통스럽게 하진 않았을까?  14일 동안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어찌 강진까지 도착할 수 있었을까? 발편한 운동화도 없던 시절. 그의 걸음 걸음에 세상에 대한 원망이 서려있진 않았을까?


그렇게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구나. 낯설고 물선 곳에 도착해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처음 의지한 곳이 이곳이었구나.  이곳 사의재.


다산은 상례사전 서문에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강진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강진은 옛날 백제의 남쪽 변방으로 지역이 낮고, 풍속이 고루하였다. 이때에 그곳 백성들은 유배된사람 보기를 마치 큰 해독처럼 여겨서 가는 곳마다 모두 문을 부수고 담장을 허물어뜨리면서 달아나 버렸다"


사의재의 입구에는 당시 주막을 재현해 놓았고, 낯설 할머니의 동상이 있다.  엥? 웬 할머니 동상?


"나 같은 죄인을 어찌하여 돌봐 줍니까?"
할매가 답한다. " 사람이 사람을 돌봐주지 않으면 누가 돌봐주겠느냐, 그리고 나 같은 상것이 더 나쁠게 뭐가 있겠느냐"


강진으로 유배되어 내려온 다산을 이곳 동문 밖 매번가 주막에서 4년 동안 기거할 수 있게 해 준 주막 할머니 동상이었다. 유일한 말 동무도 주막 할머니 뿐이었다고 한다. 정약용은 이곳 주막에 머물며 마음을 다잡아 교육과 학문 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한다. 다산초당에서 후학을 양성하게 된 배후에는 할머니의 배려와 사랑이 깃들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알고 계셨던 걸까? 인생의 풍파에 사람을 보는 눈이 있으셨던 것일까? 아님 정약용에 대한 소문을 들으신 것일까? 주막에 얽혀 있는 설화의 내용을 읽으며 주막 할머니의 내공이 느껴졌다.

  

"엄마,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해요!"

딸아이가 외치는 소리에 숙소로 들어갔다. 고즈넉한 한옥 단칸방 한쪽에 화장실이 붙어 있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보세요, 기와지붕집도 있는데 우리 집은 초가지붕이라고요. 가난한 사람들이 초가지붕 아녔나요?"


이곳 한옥 마을이 다른 지역의 한옥 마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동천정을 포함한 갈대로 엮은 초가 이엉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너무도 시골스러운 옛 모습의 토석 벽과 동네 어귀에서 집안이 보일 듯 말 듯 한  낮은 돌담길...이 낮은 사랑스러운 돌담길에서 편안함과 정감어린 정이 느껴진다.


마을 입구에는 동문매반가(주막)라는 주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를 재현하기 위해 사의재 복원 시 강진군에서 함께 만든 것이라 한다. 이 주막에서는 파전과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마당극 : 정해인이 좋~~~ 소 = 정약용 선생님이 해박한 지식과 인생을 배우고 간 그곳, 강진이 좋소!


신랑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빨리 정리하고 나가자고 한다. 풍물패의 신나는 가락 소리가 낮은 돌담 사이로 넘어 들어온다. 사의재 중앙광장에서 마당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마당극의 제목은 [ 정해인이 좋~~~ 소 ]였다. 연예인 정해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약용 선생님이 해박한 지식과 생을 배우고 간 그곳, 강진 좋~~ ]

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마당극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 정약용이 유배되었던  당시 강진에 도착한다.  모진 고문으로 지칠 때로 지쳐 있던 정약용을 주막 할머니가 자신의 주막에서 기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토리로 시작되어 유배된 이곳 강진에서 다산 초당을 만들어 18년간 후학을 양성하게 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너무 재미있었다. 음향도, 연기하시는 분들도, 내용도 모두 좋았다.

'마당극까지 보다니...'

이곳 사의재에서의 하루가 정말 달콤하다.


                                                              -다음 편에 다산초당에 관한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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