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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Jan 01. 2022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섬세히 그려낸 세계, 희망을 재정의하다

추천 지수는 : ★★★★☆ (9/10점 : 2021 올해의 책, 이견 없습니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p.37)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p.90)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p.213)


   N번방, 아동학대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인 범죄가 여전히 뉴스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관용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변화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어른들로부터 상처받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저자는, '우리를 환대하는(p.7)' 어린이의 세계를 재치 있게 또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교실의 어린이들과 있었던 다양한 일화들을 접하는 독자들은 저자가 보여준 '어린이라는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되며, 그 과정에서 어린이에 관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반성하게 됩니다.


   어린이의 눈높이로 '호소력 있는 에세이'를 만들어내다

   보통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작가 개인의 감정과 의견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문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호소력 있는 에세이는,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제시하되 그것이 다수의 독자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검토를 게을리하지 않는 에세이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장르가 작가 개인의 감정과 의견을 최대한 숨김으로써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에세이는 장르적인 특성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라는 세계>는 장르적인 어려움을 뛰어넘어 우리가 흔히 지니고 있던, 그리고 눈치채지 못했던 어린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끄집어내 호소력 있는 에세이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고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착하다'라는 단어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일 때,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p.32)'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독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며, 어른들이 이야기했던 '착하다'는 단어 속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우리가 어린이에게 그동안 '착하다'는 위계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합니다. 요컨대 저자는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놓여 있던 은밀하고도 위계적인 관계를 허물어버리고, 한때 어린이라는 세계에 있었고 현재는 어른의 세계로 들어와 버린 우리 모두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의견은 솔직하게, 그러나 이성적으로

   저자는 우리가 지니고 있던 어린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내며, 어린이를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그러나 논리적으로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는(p.150)'다고 과감히 이야기합니다. 독서교실에 참여하는 아이들로부터 수업의 대가를 받는 상황에서 함부로 사랑을 언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저자의 솔직한 면모를 접한 독자들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대상화했던 학대범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히려 저자와 같은 윤리관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납득하게 됩니다. 나아가 아동 학대범에 대해 저자는, '모든 인간이 소중하다거나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은 소중한지 아닌지 따질 수 없는 존재라고 배웠다.(p.162)'라고 이야기하여, 가해자들을 꾸짖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성과 논리로 담담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해나갑니다. 요컨대, 저자는 어린이와의 일화를 즐겁게 제시하는 데에만 자신의 감정을 활용하고, 의견 제시에 있어서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배제해 재밌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에세이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섬세함 : 어린이들과는 즐겁게, 어른들에게는 단호하게

   이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은 어린이들과의 일화는 즐겁게 제시하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용서할 수 없는 관용에 대해서는 저자가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옥스퍼드에 갈지, 케임브리지에 갈지 아직 못 정한(p.27)' 하윤이의 꿈이나 "선생님, 저 오늘 생일이다요?(p.190)"라고 이야기하는 주완이의 모습은 아이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활용한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아이들을 장난스럽게 묘사하지는 않으려 하는 섬세함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라는 세계가 지닌 순수함을 느끼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반면에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서 저자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힙니다.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지닌 여러 고정관념들은 파괴됩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노키즈존'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p.213)'라는 문장은 '노키즈존'이라는 방침이 아이들에게 배울 기회를 없애고 문제의 원인만을 봉쇄하려는 미봉책임을 시사합니다. 가게나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구는 어른들에게는 어찌하지 못하면서, 아직 예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가장 여린 아이들을 배제한다는 모순이 이러한 방침의 잘못된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 권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저자의 생각이 모두 공감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저자의 의견이 지나치게 드러난 나머지 글의 전개가 다소 급해 보이는 글들도 몇 개 있었으며, '노 패런츠 존'과 관련된 저자의 의견 또한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님들을 두고 제삼자인 손님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과 멀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의견과 생각이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검토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에세이는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그 검토는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갖게 됩니다. 저자는 어린이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반말을 사용할지 존댓말을 사용할지 고민하면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린이가 나한테 반말을 하면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p.189)'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자신과 어린이 사이의 호칭 정리를 나름의 자기 성찰을 기반으로 진행하였으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아이들의 편지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흔들리는 자신의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솔직함이 저자의 단호한 의견을 좀 더 신빙성 있고 현실적인 의견으로 만들어줍니다. 바로 이 솔직함과 섬세함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저자의 의견을 단순히 저자 개인의 의견이 아닌, 각자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하나의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요컨대 독자들은 어린이라는 세계를 즐겁게 바라보면서도 어른이라는 세계에 속해 있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절망과 희망에 대한 저자의 표현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p.219-220)'

   여태껏 '세상 망했다', '이런 나라 빨리 떠야 한다'라고 절망적인 언사를 내비치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특유의 기발한 논리로 일갈합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어른들과 나름의 세계 속에서 즐겁게 자라날 많은 어린이들이 언제나 희망을 위해 오늘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이 글을 읽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방향을 전환한 제가 감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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