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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Feb 21. 2022

<안나의 토성>, 마스다 미리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도킹에는 실패했지만

추천 지수는 : ★★★ (6/10점 : 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읽은)

   ★ "지구 역사가 46억 년인데 겨우 20분 지각하는 게 뭐 어때서?" (p.52)


   ★ "그걸 알면 무슨 도움이 되는데?" / "글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 (p.101)


   ★ "그래, 앞으로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니. 언젠가 달에 살게 된다면 세탁도 꼭 해야 하잖아." (p.120)


   열네 살인 안나는 '우주 덕후에 촌스럽지만, 다정한(p.21)' 대학생 오빠 가즈키를 두고 있어요. 중학교 생활을 귀찮다고 여기고, 다른 별로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중학생 안나에게 가즈키는 목성은 가스 행성이라 살 수 없다는 둥 이과적인 농담을 던지곤 하는데요. 집과 학교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안나는 오빠가 전해주는 우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런 안나가 친구인 미즈호의 말을 듣고, 오빠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하기 시작하는데......

 

   잔잔하면서 독특하게, 마스다 미리의 감성으로

   <오늘도 상처받았나요?> 등 만화로 유명하신 마스다 미리의 첫 장편소설 <안나의 토성>입니다. 작가님의 여타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잔잔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는 일상과 작가님의 독특한 시선이 일품인데요. 특히 안나와 가즈키 사이의 대화는 작품의 매력을 가장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외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서 '전교생은 혼자 도시락을 먹는 규칙 준수(p.54)'와 같은 교칙을 꿈꾸는 안나의 모습이나, 우주의 구조를 발견한 과학자의 노벨상 소식을 듣고 감탄한 나머지 밥을 거르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면서도 톡톡 튀는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빠져들 수 있습니다.


   '중학생의 일상'과 '우주의 지식'

   그런데 잘 어울려야만 할 안나의 일상과 오빠의 우주 이야기가 작품 내에서는 생각보다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가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듯 제시되지만, 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따로 논다는 느낌이 적지 않아요. 문제는 두 이야기가 도킹에 실패하면서, 해당 작품이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다는 점입니다. 완독한 후 인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는 것 이외의 인상이 남지는 않았으며, 작가님의 여타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나름의 재미를 간직하고 있지만, 작가님의 이름을 놓고 보더라도 해당 작품이 설익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글과 그림 사이의 간격, 도킹에는 실패했지만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던 와중에, 머릿속으로 작가님의 만화 그림체에 <안나의 토성>의 문장이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보았어요. 그러자 책에 쓰인 문장들이 만화에 사용될 때, 보다 잘 어울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즉, 이 소설이 날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해당 작품이 소설보다도 만화를 위한 대사집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추측입니다. 

   그렇다고 작가님의 글솜씨를 미흡하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것이, 전에 쓰신 에세이 <영원한 외출>은 에세이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있었거든요. 어쩌면 작가님께서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하신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소설과 만화, 또한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신 후 향후 다른 작품을 집필하신다면,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하늘에는 오늘 밤 죽는 별도 있고 지금 태어나는 별도 있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안. 누군가와 오늘 밤에 본 별하늘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지 않니?"(p.192)

   그런데 사실 작가님의 첫 소설 출간에 대한 우려를 사전에 많이 접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이 책을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읽었습니다. 무언가를 거창하게 말하고자 하는-그러나 사실상 거창할 것 없었던-책들을 최근에 워낙 많이 접했던 탓일까요. 오히려 이렇게 일상 이야기를 차분하게 보여주는 책에 마음이 더 끌렸습니다. 설령 이 책이 소설로서는 다소 부족한 면모를 지니고 있더라도,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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