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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Mar 21. 2022

<엄마의 엄마>, 스즈키 루리카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재능이 뛰어납니다 근데 '겸손'까지 곁들인

추천 지수는 : ★★★★ (8/10점 : 이걸 진짜 고등학생이 썼다고?)

  ★ "이미 오래전에 덮었다고 여긴 과거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복수할 때도 있습니다." (p.66)


   ★ 앞으로도 똑같이 돈에 좌우되는 인생일 것 같다. 그것도 큰 금액도 아닌 돈에. (...) 에이, 그만두자.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p.115)


   ★ "자기가 한 짓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았으면 우리 앞에 도저히 못 나타났을걸." (p.138)


   중학교에 입학한 다나카 하나미는 '자갈밭에서 자는(p.27)' 것보다 낫다며 새 이불을 사지 않는 궁색한 엄마 밑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던 와중 그녀의 앞에 낯선 할머니가 등장하는데요. 하나미를 '손주'라고 부르는 할머니 앞에서 엄마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져버립니다. 친구인 사치코에게서 듣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이층에 살고 있는 겐토의 비밀,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미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진짜 고등학생이 썼다고?' /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감정선으로

   스즈키 루리카의 <엄마의 엄마>입니다. 원제는 「太陽はひとりぼっち(태양은 외톨이)」였는데, 출판사 혹은 번역가가 임의로 변경한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변경한 제목이 더 마음에 드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 이야기하기로 해요.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예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소외받는 사치코의 언행과 인물의 성격을 반영하는 집 가구 배치, 돈과 관련해서 하나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등 작중 소재들이 섬세하게 묘사되면서도 밋밋하다는 느낌이 없어 독특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물/사건/배경을 다루는 능력이 웬만한 성인 작가들 이상으로 탁월했습니다.


   꾸준히 템포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소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겸손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드러나 이것이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마치 자전거 페달을 꾸준히 밟아나가듯, 작가님은 자신만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소설을 마지막까지 이끌어갑니다. 일상이 흘러가는 것과 비슷하게 담담하게 서술되는 이 소설에서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하게 묘사될 수도 있었던 소재들임에도 그것을 활용하는 작가의 필체는 어디까지나 담백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미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려는 나는 역시 단순한 걸까?' (p.138) 라며, 자신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의문을 갖는 부분은 작가님이 작품을 편향된 감정으로만 서술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여 인상 깊었습니다.


   이야기가 하나로 뭉쳐지지 않아 다소 아쉬운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작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고 단지 열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태양은 외톨이>라는 원제는 최후반부에 그 의미가 밝혀지는데기대했던 만큼 제목이 강한 주제의식을 던져주지는 못하고 있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행동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엄마의 엄마>로 제목을 변경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것이 꼭 의미 있는 주제만을 전달해야 된다든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의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읽고 난 뒤 머릿속에 특정한 메시지가 남기 힘들어집니다. 같은 책에 수록된 단편에 해당하는 <오 마이 브라더>가 진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본편인 <엄마의 엄마>도 응집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인상적인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 아니요. 오늘은 가족끼리 백화점에 가셔서요." (p.129)

   사치코의 환경을 인물의 대사로 멋지게 요약한 이 문장을 보며, 작가님이 나중에는 어떤 책을 쓰게 되실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이 사물과 사람을 다루는 모양새는 고등학생은 물론 일반 작가들 사이에서도 더욱 탁월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나 독자인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재능이 있음에도 문체는 어디까지나 겸손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실력 있는 작가라도 거만하다면(혹은 거만함을 숨기려 애써 거짓된 겸손을 늘어놓는다면) 독자들은 금세 불편을 느껴버리니까요. 부디 작가님께서 앞으로도 이러한 문체를 꾸준히 유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엄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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