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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Sep 20. 2021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이꽃님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가까스로 독자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었으니

누군가를 웃게 만들었으면 그걸로 충분히 쓸모 있는 사람 된 거 아냐?” (p.196)


공부가 그다지 체질에 맞지 않는 평범한 중학생 형수와 우영은, 어느 날 같은 반 은재가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몇 번이고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끝끝내 희망을 상실해버린 은재와 그런 은재를 어떻게든 돕고자 고민하는 형수,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우영과 그런 우영이 신경 쓰이는 반장. 각기 다른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네 아이를 지켜보는 서술자는 여태껏 보았던 일반적인 소설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서술자입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쓴 이꽃님 작가님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서술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최근 들어서 아예 신을 서술자로 내세운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까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운’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녀석을 서술자로 내세운 책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독특한 서술자는 목에 서늘한 바람을 불어넣어 등장인물들이 위험을 예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운'을 서술자로 설정하면서 서술자와 작가 사이의 거리가 짧아진 탓인지, 처음에는 서술자가 지나치게 이야기에 개입하고 있어 읽는 데에는 조금 불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형수나 은재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싶은데 자꾸만 서술자가 도중에 끼어드는 느낌이 강했다고 할까요. 이전 작품에서도 작가가 작중 캐릭터에 빙의해버리는 현상이 몇 번인가 발생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것이 조금 더 심해졌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특한 서술자는 작품의 분위기와 서사 전달에 아주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서로가 마주 볼 수 있게 바람을 불어넣고, 왠지 모를 불길함을 심어주어 재난을 피하게 해주는 서술자의 행동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뉴스로 접하던 독자들의 소망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서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이꽃님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처럼 캐릭터들이 지나친 개성 없이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각자의 성격과 배경, 그리고 아이들 사이의 관계 또한 아이들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이 작품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밋밋한 서사의 가장 큰 원인은, 작품에서 악을 맡고 있는 은재의 아빠가 생각보다 살아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재 아빠는 우리가 영상 매체에서 흔히 본 ‘폭력적인 학대범’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자비 없이 아이를 때리고, 서슴없이 욕을 내뱉습니다. 아이의 꿈을 모조리 짓밟고, 매일 술에 절어 물건을 집어던집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들이 이 책에서는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 다른 캐릭터에 비해 유독 은재 아빠만큼은 캐릭터가 죽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물론 작품에서 악의 근원을 맡고 있는 은재 아빠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란 작가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쉽게 따르지 않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된다, JTBC 드라마 <괴물>에서도 이야기되었듯, 쓰레기 같은 범죄자에게 사실은 이렇게 살았다든지 하는 서사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은재 아빠가 작품에서 죽은 캐릭터가 되어버리면, 아무래도 책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생겨버립니다. 우리가 어떤 소설을 읽을 때, 악역에 해당하는 인물이 권선징악이라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 낸 장치라는 느낌이 들게 되면(물론 저런 학대범은 세상에 수두룩하게 많습니다만), 독자들은 이야기에 흠뻑 빠지기보다 그것이 픽션인 것을 느끼고 거리를 둬버릴 테니까요.


그래도 이 작품이 위와 같은 단점을 끌어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가까스로 행운을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요컨대 ‘행운’이라는 독특한 서술자가 작품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기 때문도 있고, 등장인물들이 충분히 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언젠가 분노했던, 잔인한 학대 현장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묘사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결말 부분에서 등장인물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망에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아이들을 상대로 한 비겁한 범죄들이 뉴스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상처 받고 있을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행운이 다가가고 있기를 그저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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