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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Sep 18. 2021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

보통의 사랑에 치밀하게 '생명'을 불어넣고

보통의 사랑에 치밀하게 '생명'을 불어넣고

보통의 사랑에 치밀하게 '생명'을 불어넣고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아주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p.220)


1982년을 살고 있는 '은유'와 2016년을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은유'.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던 두 사람은 우연히 시간을 뛰어넘어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살고 있는 시대는 다르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솔한 고민을 나누던 두 사람은, 로또 번호나 학력고사 시험지를 교환하려다가 실패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16년의 은유는 1982년의 은유에게 돌아가신 엄마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두 은유는 점차 자신들이 깊은 운명의 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점차 깨달아가게 됩니다.


얼핏 들으면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줄거리입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들이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서로 알게 되는 이야기는 <시그널>, <나인>, <콜>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졌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펼쳤을 때는 소설이 자칫 진부한 이야기로 흘러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우려를 말끔하게 해소하면서 명작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우선 파격적이게도 이 소설은 짧은 편지들을 묶어놓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독자들은 약 40개 정도 되는 편지들을 읽어 나가면서 서사의 흐름을 스스로 상상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해야만 합니다. 첫째로, 편지의 내용에 줄거리에 해당하는 인물, 사건, 배경을 집어넣으면서 간간히 복선과 소재들도 빠짐없이 집어넣어야만 합니다. 둘째로, 어디까지나 '편지'라는 형식을 깨뜨리지 않고 내용을 전개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으로 쓰는 것보다 비교적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에, 미숙하게 스토리를 전개할 경우 자칫 소설이 상당히 읽기 불편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편지를 쓰는 등장인물의 나이에 맞게 문체가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편지의 형식을 지켜나가면서도 이야기 구조에서 내용과 복선들이 치밀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나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편지에서는 편지를 쓴 사람의 감정과 생각만이 나타날 뿐, 편지를 읽었을 대상의 반응이 작품 내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 편지를 읽은 등장인물의 심정이 어땠을까?'하고 생각하게 되고 이것이 작품의 여운으로 오랫동안 남게 됩니다.


물론 편지 형식만으로 많은 내용을 말끔하게 담아내기란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설처럼 써 내려간 단락 또한 존재합니다. 또한 주제 의식과 밀접한 문장들을 다른 글씨체로 강조해서 표기한 점은 세련된 형식과 내용에 비해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편집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작품성에 비교하자면 매우 작은 단점에 해당합니다. 독자들은 중간부터 결말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마지막까지 홀린 듯이 작품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덮을 즈음이 되면, 분명히 다 예측 가능했던 이야기인데도,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숨은 메시지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여운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사랑'이나 '가족'과 같은 평범한 주제를 택하면서도, 주인공인 두 은유의 밀도 높은 캐릭터성과 참신한 구성이 평범한 주제에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생명력이 독자를 제대로 감동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정도였기에, 이 작품은 명작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어떤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어쩌면 그 운명도 갖은 기적들 위에서 만들어졌을지도.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저희 서재에서 강력 추천하니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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