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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Oct 03. 2021

<홍천기 1>, 정은궐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으면 좋았을 걸 그랬소

(* 이 서평은 yes24 주최 <홍천기> 서평 이벤트의 항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식상한 비유는 재미없사옵니다."(p.318)


출중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백유화단의 천재 화공 '홍천기'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몸으로 받게 됩니다.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이 남자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별자리를 읽을 수 있는 서운관 시일 '하람'인데요. 두 사람은 동짓날 밤의 인연으로 점차 가까워지게 됩니다. 당찬 성격의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안평대군, 그녀의 재능에 대해 갈등하는 화단주 최원호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인공 마음속에 깃든 화마는 서서히 주인공들을 위협해가고 있습니다.


<해를 품은 달> 등 조선시대 로맨스물로 유명하신 정은궐 작가님의 최신작 <홍천기>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화사 '홍천기'를 주인공으로 한 대체역사물로, 원본은 2016년에 발행되었습니다. 제가 서평을 맡은 에피소드는 전 2권 중 1권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장르소설이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작중 세계가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이겠죠. 연극, 드라마는 무대 위에서 소품을 통해 해당 장면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만, 소설은 오로지 글자만으로 가상의 공간을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집니다. 작가가 만약에 조선시대를 묘사하고자 한다면, 조선시대 사람으로 빙의한 것처럼 주변 환경과 인물들의 대사를 묘사해나가야 하죠. 이러한 작업이 서툰 경우, 읽는 사람이 '여기가 조선시대야 현대야?'하고 당황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홍천기 1>에서는 그러한 배경 설정에 대해 읽는 사람을 시대 안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책이 지니는 여러 매력이 반감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청지기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쩌면 정신 나간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불쌍한 신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라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문법도 맞지 않고, 한 번 읽었을 때 어떤 얘기를 하는지 온전히 와닿지 않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은 독자의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저하된 가독성은 몰입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권의 전반적인 내용은 홍천기와 하람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인간관계를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숨겨진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최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며, 그전까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 주인공, 둘 사이의 오해, 나라의 집권자를 몰라보는 당찬 여자 주인공 등 기존 장르소설에서 자주 등장했던 클리셰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1권 후반부에 다다를 때까지 독자들은 이대로 계속 뻔한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1권이 끝나기 전에 흥미로운 전개가 시작되지만, 초중반의 늘어지는 전개가 독자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작품이 지니는 단점 또한 명확합니다.


약 300쪽가량 묘사되는 홍천기와 하람에 대한 일상 이야기는 둘의 마음이 서로 가까워지는 심리를 자연스럽게 전개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이 이익으로 곧장 이어지기에는 부과되는 위험이 너무나도 큽니다. 독자들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읽어나가며 식상한 클리셰를 반복해서 접해야 합니다. 아무리 장르문학의 매력이 역동적인 클라이맥스라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다다르기에 독자들이 떠안을 부담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화마와 호령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만 더 일찍 등장했다면 이 책은 좀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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