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색의 빛깔
학교를 오가며 마음안의 아픔은 그녀에게 변화의 기회를 앗아갔다.
그저 정체되어있는 상태로 친구들을 관찰했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신의 마음과 곁을 스쳐 지나가는 웃는 얼굴의 사람들 속에서 한없이 외로웠다.
타인을 관찰하고 스스로 상처를 받으며 그 기억들은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지나치는 차가운 모습, 차가운 눈빛, 길 위의 혼자인 내가 싫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게는 내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자기 보호색으로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고 타인에게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 내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
내가 받은 상처였다. 그리고 그 상처를 낯선 타인들에게 똑같이 주고 있었다.
내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이었다.
당연했다.
난 그래야 했다.
난 내 앞의 삶을 살아내야 했으니까.
등.하원 길의 세희는 혼자였다.
더이상 유쾌한 농담을 하지 않는 어두운 표정의 그녀 곁에는 어떤 친구도 있어주지 않았다.
한끗차이였다.
마음먹기 나름.
그 한끗차이였다.
하지만 스스로 마음안의 거짓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지고 한없이 초라하고 발에 채이는 돌덩이 같은 그녀의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야기를 표현하려는 그녀의 곁에서 기다려주며 눈을 맞추어주는 이는 없었다.
마음 안에서는 현재의 삶에서 몸을 일으키라고 수도 없이 되내이고 소리쳤지만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녀에겐 버거웠다.
이미 틀려버렸다.
중학생.
10대의 그 푸릇한 시간을 그녀는 자기의 마음안에 갖힌채 어두움 속에서 하루를 이겨냈다.
하루.
하루..
그렇게 살아내면서
마음안의 공허함과 바닥을 치는 일상은 세희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장 친한 친구였다.
혼자이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혼자임을 보이는 것은 너무도 비참한 일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다음 행동이 이해가 되고 편안한 친구를 찾았다.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며 그 아이도 세희를 친구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 아이의 닮고 싶은 모습을 바라보며 모델링하였다.
그리고 그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이미 친구인 아이에게도 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그러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떠나고 나는 혼자일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확정하지 못하였으며
아주 많이 완전하지 못하였다.
아주 많이 실패의 기억을 가진 패배자였다.
이미 그랬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내가 하루를 버텨내는 게 하루를 살아내는 게.
앞으로 그다지 긴 시간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의미 없이 이어져가는 이 삶 속에서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내 손 곁을 스치기를 그저 희망하였다.
희망.
이라는 두 글자 안에는 세희의 온 우주가 담겨있었다.
어느 하원길.
평소에 같이 하원하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어울리며 혼자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
혼자서 걷는 그 길은 또래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지나치는 시선들 사이에서 세희의 마음을 더 자신감 없게 만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삐딱하게 아이들의 무리를 지나쳤다.
어느덧 길 위에서 혼자임을 확인하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걷는다.
집으로 가는 길.
혼자라는 꼬리표는 태생부터 가짜였던 세희에게는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 마시고 길 위에 버려진 음료의 종이 포장지처럼.
아픈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길 위의 혼자였다.
그 종이 포장지.
걸음을 멈추어 서서 들여다본다.
선명한 색을 내기 위해서 테스트 프린트된 몇 가지의 색이 있다.
아름다웠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껴본다.
아름답다.
빨강, 파랑, 초록.
몇 가지의 색이다.
그 선명함에 끈적한 음료가 남아있는 바닥의 포장지를 손가락으로 스쳐본다.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폐기를 기다리는 종이 포장지였다.
그렇지만 그토록 선명한 빛깔의 색이 숨겨져 있었구나.
한참을 들여다보며 멍하게 있던 세희는 걸음을 옮긴다.
그렇지만 마음 안에는 뭔가가 채워진 느낌이다.
저 색을 만져보고 싶다.
선명한 색의 물감을 손으로 묻혀서 종이 위에 끼적이고 싶다.
붓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그려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간절하게..
현재의 돌파구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 시절에 붓을 들고 색으로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만 같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현재의 나에겐 종이와 펜.
노트북이 있으니
‘그걸로 대체한다.’
내가 나에게 거는 주문처럼.
현재에도 미완성인 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나에게.
다가올지 확신은 없지만 기대를 걸어 보며
다시 속삭인다.
‘세희야, 그걸로 대체한다.’
‘현재의 너가 소유하고 있는 그걸로 대체한다.’
중학교.
그 시절을 한참이나 지나서 이렇게 미성숙한 어른이 된 나 자신이지만
내 마음안의 색을 펼쳐보자.
검정색의 글자.
그 안에 오색 빛깔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려보고 싶다.
타인이 내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그의 마음 안에 무지개를 펼쳐볼 수 있다면 내 삶은 조금은 더 가치 있어질까?
소망한다.
희망한다.
이제는 나 스스로 빛을 내어 볼 거라고 조금 더 노력하며 이렇게 글을 적어보는 시간을 감사한다.
세희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다가 현재의 자신의 소망을 되새겼다.
더운 날씨에도 쉽게 차가워지는 손에 입김을 불어주며 어루만져 줄 내 곁의 사람.
여전히 숨 쉬는 것처럼 기다린다.
직진해서 붙잡아 주길.
조금은 놀란 표정의 세희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어색함에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르지만.
나를 붙잡아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그렇게 생각할거라는건
세희의 마음속의 비밀이고 소망이고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