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란트 17화

내 존재의 프리즘으로 세상의 색을 보는사람/ 엄마

by 하늘바람

어린 세희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 모든 것이었다.

이 세상의 처음이고 끝이었다.

엄마가 돌보아주는 방식대로 세희는 좋아하는 음식이 가려졌고 자주 하는 표현이 생겼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는 버릇들이 있었다.

엄마를 닮아갔다.

그냥 엄마. 라는 단어가 좋았고.

엄마의 품 안이 좋았다.

엄마의 곁에서 늦잠을 자며 행복한 이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희는 엄마가 사주는 레이스 달린 공주 옷을 입었고, 엄마는 최근에 아이들이 자주 읽는 그림 명작동화를 구입하였다.

엄마가 그림 명작동화 중에서 책을 골라주면 언니와 함께 그림을 보며 마음대로 이야기를 꾸며서 읽어보는 놀이를 곧잘 하기도 했다.


옛날 우리집에서 언니와 함께 아빠가 사다 준 뻥튀기를 먹던 일.

우리집 대청마루 전등 아래에 제비가 집을 지어서 아기 제비들을 낳았던 일.

아기 제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제비들이 잘 성장하여서 떠나갈 때까지 돌보아 주었던 엄마와 아빠였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며 가치 있는 마음안의 보석이다.

그 누군가 알아주는 보석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내 생각 안에서.

가장 빛이 난다.

내가 떠올리고 미소 지을 때 가장 빛이 나는 소중한 기억의 보석이다.

그렇지만 내 소중한 보석들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그 빛을 잃어버린다.

마음이 아팠고 슬픈 어두움에 빠져있던 나의 삶 동안 그 보석들은 버려졌다.

내가 돌보지 않는 그 보석은..

그저 돌덩이에 불과했고.

사람들은 발에 채이는 그것을 하찮게 멀리 차버렸다.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다시 돌아본 거울 속의 나는 아름답지 않았지만

일부러 자꾸만 보던 거울속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나와 마주 보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제는, 나의 시선을 들어 올려 나의 눈을 마주 본다.

나의 모습은 힘이 들었고,

상처의 기억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난 자신을 치유해야 했다.

생존해야 했으니까..

나의 감추고 싶은 모습을 숨기고, 때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도망쳤으며, 유쾌한 듯. 다 아는 것처럼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하였다.

난 그때 정말 가짜였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삐에로 같은 표정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들어서는 어두운 집의 거실에는 엄마와 남동생이 있었다.

엄마는 아직 어린아이인 남동생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힘껏 내어주고 있었다.

좋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그 아이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 같았지만 엄마는 쉬지 않고 표현하며 자신이 아는 이 세상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세희의 눈에는 엄마가.

초라해 보였다.

집안과 집 밖, 그 공간 사이의 공기와 먼지의 차이를 느끼며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감정을 알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때 난 엄마를 외면했다.

마치 무가치한 돌덩이를 본 것처럼 말이다.

그 후의 엄마를 향한 나의 말과 표현, 툭 던지는 그 행동에서 엄마는 상처의 아픔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느꼈을 것이다.

나의 원론적인 문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가족.

나의 엄마, 아빠.


빛을 내지 않았던 그 의미들은 그 안에 속한 나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음을 나는 그때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어떤 의미들은.

나에게 이 세상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지만.

나는 그땐 알지 못했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며 마주 보이는 가족을 향해서 마구 퍼부었던 말들.

좀 더 아프게 상처 주기 위해 깊이 숨겨져 있던 당신의 여린 생채기를 마구 후비고 비틀었다.

당신은 눈물을 보였다.

울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는 나는 마치 승리자라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신의 슬픔은 곧 내 것이었다.

내가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이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타고 그 슬픔은 고스란히 나에게 느껴졌고, 난 당신의 눈물이 짠 것을, 당신의 품 안이 따뜻했던 것을 기억했다.


당신은 내가 사랑했던 엄마였다.

그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재잘거리던 어린 나였다.

엄마는 어린 나를 먹이고 키우며 세상으로 나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이 좀 더 능숙하지 못 했지만.

좀 더 세련되지 못 했지만..

남들 보기에 멋지지는 못 했지만..

내게는 가장 따뜻했던 엄마의 품이었다.

어린 나의 늦은 아침.

머물고 싶었던 엄마의 옆자리였다.


이 순간 세상을 멈추고 싶을 만큼 나에게 멋진 기억이었다.




엄마가 가지고 다니던 눈에 익은 가방.

멋을 낼 때면 꺼내어 입었던 투피스.

화장대에 올려져 있는 가끔 사용하는 색조화장품들.

오래된 수첩과 처녀 때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들.

나에게 익숙한 엄마의 취향이었다.

세희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닮았다.

닮기 싫었던 부분도 어느새 내 것이 되어있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투와 은연중의 행동들은 엄마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사고방식의 결이 비슷하였다.

엄마의 좋은 점만을 닮고 싶었다.

과정 중에 혼란스럽고 어려웠지만.

이제는 내 자신을 아끼도록 노력하며, 엄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도록 여전히 훈련 중이다.




나는 이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돌덩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그 돌덩이는 나에겐 보석이니까.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더 없어지고 마음이 바닥을 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난 그 보석을 들여다보고 떠오르는 소중한 기억들로 마음을 정화시킨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다.

나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보석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달란트가 있다.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을 지나 그 달란트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나의 고유한 오리지날.

남들이 섣부르게 가짜라고 판단하는 것에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내 자신의 삶.

과거, 현재, 미래까지.

오늘을 사는 나는 내 자신의 호흡을 느끼며 편안하고 평안한 마음을 감사한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겐 각각 다른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되는 하찮은 자신의 달란트를 쉽게 마음속에서 져버리기도 한다.


마음속에 쨍하게 빛나며 떠오르는 각자의 삶에서 행복하고 소중했던 기억들.

그 안의 달란트를 찾고, 남들은 모르는 그 돌덩이안의 반짝이는 소중함을 떠올린다면 자신의 삶은 이제부터 작은 빛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과정중의 사람들.

과정중의 삶.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빛을 찾아가는 순간이다.

그게.


지금이다.



세희의 기억엔 어린 시절 예쁘게 꾸민 엄마가 좋았다.

엄마의 물건들이 좋았다.

긴 시간을 지나 이제 40대가 된 내가 보는 엄마의 물건들은 낡고 허름하다.

그 물건을 아끼며 사용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 한편이 아리다.

난 새롭게 나오는 화장품들과 예쁜 색의 립스틱을 엄마에게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엄마를 통해서 나는 세상을 배우고 알게 되고 보호받았다.


이제는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엄마에게 나는 친절한 모습으로 그 길을 보여주고 싶다.

당신을 통해서 세상을 보며 그 빛을 배웠던 나는.

이제는 그 색을 당신에게 이야기 해 주며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여주고 싶다.

나의 프리즘으로 당신이 예쁜 색을 볼 수 있도록.

난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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