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란트 19화

나의 상처딱지

by 하늘바람

20대의 시절을 어둔방에서 라디오와 함께 보냈다

세희는 나이를 먹었다.

소윤이 언니는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였으며 이제는 혼자 방을 쓰는 세희였다.

처음에는 언니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이른 새벽.

잠이 깼을 때 곁에서 들리는 낮고 안정적인 언니의 숨소리는 편안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금세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언니가 결혼하는 것을 보며, 나도 32살이 되면 결혼을 하겠구나.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난 나이만 먹어갔고, 머리엔 새치가 생겼다.

부모님도 나이가 드셨다.




아버지.

원망스럽고, 마음 아픈 존재.

추운겨울 칼바람 맞으며 얼어있는 아스팔트 위로 나서는 매일의 이른 아침.

나는 어둔 방안에서 조용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둔탁한 현관문을 열고, 밖에서 잠그는 소리를 듣는 그 새벽에는.

난 이불을 올려 덮으며 이마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이 추운 겨울날.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걷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얼어버린 손을 매만지는 모습이 떠올라서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세희는 녹차를 마셨다.

컵에 녹차티백 하나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천천히 녹차가 우러난다.

입에 닿는 그 뜨거운 녹차를 천천히 삼켰다.

그 뒷맛은 씁쓸하다.


아버지.

한모금의 따뜻한 녹차를 드리고 싶다.

당신이 맛보실, 그 뒷맛은 씁쓸하다.

그렇게 몇 번의 겨울이 지나가도록 몹시 추웠던 날이 있었고 세월의 무게에 당신의 등은 굽어간다.

여전히 추운 겨울을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자리를 열심히 알아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해 봤던 일.

콜센터, 총무사무원, 사무보조.

참 다행이도 작은 무역회사에 총무 사무원으로 취업이 되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사장님은 출근하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작은 회사였지만 내실이 있어서 각자 분담된 일을 하면 되는 곳이었다.


영어와 일본어로 전화가 오기도 하였다.

기다려달라는 표현을 암기하여서 이야기하며 전화를 연결해 주기도 하였고 두근거리는 기분도 느꼈다.

가끔은 서류의 날짜나, 본문의 물품 수량 같은 것들을 실수하기도 하였지만 다시 작성하면 된다고 이야기 해주는 곳이었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고.

전보다는 나아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햇수가 지나갈수록 권태로움을 느꼈고 자신의 초라함이 보였다.


그렇지만 다시 하루를 살아내고. 또 다시 하루를 살아내고.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보내며 세희는 나이를 먹었다.




나의 상처 딱지.

처음에 생겼던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난 치료하지 못 했었다.

그 자리에 딱딱한 딱지가 앉았고,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아질수록 상처는 덧났다.

치료하지 못한 그 딱지는 점점 더 단단히 쌓여져 갔다.

이제는 손톱으로 눌러보아도 아무 감각이 없다.

더 이상 쉽게 상처받지 않으며 무감각하고 무뎌졌다.

상처딱지 안에는 아직 치료하지 못한 여린 상처가 있었으니 난 나의 상처를 스스로 보호해야만 했다.

하지만.

난 치료하고 싶다.

내 상처딱지.

그 근본적인 치료를 하고 싶다.

내 상처딱지안의 여린 살에 약을 발라주고 싶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의 시계는 돌려볼 수 있으니까.

오늘 내가 떠올리고 기분 좋은 생각으로 웃는 이 시간은.

지금의 소중함이니까.

그냥 보내온 하루, 하루가 만들어낸 시간들.

그리고 세월들.




현재에 충실하자고 실수하지 말자고.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고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세희였다.

손을 깨끗하게 자주 씻으려 하였고 수도꼭지의 비눗기에 물을 여러 번 뿌리는 버릇이 있었다.

실수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완벽하게 삶을 살아나가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노력하는 나의 삶.

남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던지 난 나 자신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소중함으로 세희는 자기 자신을 근본적으로 믿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회사의 중요한 금고를 잘 잠궜어.’

‘내가 현관문을 잘 잠궜어.’

‘내가 그 서류에 틀리지 않게 타이핑을 했어.’

사소하고 작은일들 이었지만 그것들이 모이며 내가 실수하지 않고 내 일을 잘했다는 자신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난 설레이고 있었고, 여린 나의 상처 부위는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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