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퍼즐
엄마에게서 채워지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엄마는 사람은 에티켓이 좋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정작 엄마가 타인을 대하는 에티켓은 그다지 원활하지 못한 것이었다.
실체가 없고 실생활에서 가까이 없는 타인이나 연예인을 따라하는 모델링은 공허감을 안겨주었다.
세희에게는 비워진 그 부분을 채워주는 소윤이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나의 일상에 있어서 나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언니가 초경을 하는 것을 보며 나 또한 저렇게 어른이 될 것임을 알았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교복을 입는 것을 보며 나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낯설음을 덜 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세희에게 선도부 언니들은 친절하게 대하였다.
등굣길.
선도부 언니들이 다른 아이들의 머리에서 반짝이는 핀을 압수할 때.
세희는 몇 번이나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어느 언니는 “네가 소윤이 동생이구나”라며 웃는 얼굴이 되기도 하였다.
괜하게 뿌듯한 마음이 들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두 살 터울인 소윤이 언니는 원래부터 세희 보다 공부를 잘하였고 똑똑하였으며 야무졌다.
엄마의 자랑거리였으며 부풀려 말하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말투 안에서 언니는 더 높이 떠올랐다.
그에 비해서 세희는 엄마의 걱정거리였다.
언니에 비해서 뭐든지 늦게 배우며 더딘 아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한 엄마는 세희가 많이 느리다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연필을 잡고 숫자와 글자를 배우는 시작 단계에서 세희는 왼손으로 글자를 썼다.
엄마는 자신의 자녀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책상 앞에 앉은 세희의 손을 자로 때려가면서 오른손으로 적어보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세희도 참 느렸고, 그걸 고치려는 엄마의 의지도 참 굳건했다.
엄마는 그저 세희가 보통 아이만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뒤떨어지는 아이가 되는 건.
모래 위에 세워진 엄마 자신의 자존감처럼.
쉽게 무너지는 상실감이었다.
세희 또한 생각해보면 엄마 덕분에 학습부진아는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소윤이 언니는 세희에게 있어서 여러 부분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친구를 대하는 법이나 식당에 갔을 때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는 남을 위하는 버릇 같은 것들이 소윤이 언니에게는 노력으로 인해서 학습 되어져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세희는 배우며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몇 가지 습관을 가졌다.
그렇지만 다정하기만 한 언니는 아니었다.
때로는 쌀쌀맞고 독한 말투로 세희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그래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일상의 해결을 제시해주는 사람이었고 세희의 미래를 걱정해주며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고등학교.
그 어두운 시절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언니였지만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상처 입기도 많이 하였지만, 함께 20대를 지내오며 공감하는 것들이 있었고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나누었던 일상들은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다.
세희의 어두운 하루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하루를 보낸 기억들을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은 정말 삶에서의 큰 힘이 되었다.
아마도 소윤이 언니가 세희의 곁에 없었다면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는 세희는 더 황량한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호흡의 버릇을 알고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은 일상의 삶에 있어서 버팀목일 것이다.
미워하기도 하였고 상처의 기억이 되기도 했던 언니와 가족의 의미들은 지루하게 흘러가는 하루 중에서 그 어느 시절을 떠올리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 시절의 감정을 다시금 마음속에서 두근거리게 하고 그럼으로써 현재의 내 자신의 삶이 굳어버리지 않도록 정서적인 도움을 주는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현재를 살아나가며 어린 시절의 소중했던 마음을 잊고 놓쳐버린다. 그저 하루의 시작 선상에서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나가는 삶의 굴레 속에 버텼다는 하루씩이 메꿔져 나아간다.
그렇지만 가끔은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언니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편안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타인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나와 가족과의 기억들.
아름다운 기억들만은 아니었다고 해도, 눈물 흘리고 미워하며 생채기를 내는 기억들이 아프게 다가온다고 해도.
상처는 잠깐이다.
마음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타인에게는 돌덩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그 소중한 빛을 내는 존재들.
가족이라는 운명적인 의미의 피를 함께 나눈 존재들.
내가 그들과의 상처로 아프고 눈물 흘렸더라도 그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나는 성장하였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상처딱지 만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의 연약한 속살. 그 기억을 꺼내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줄 수 있는 내 가족이다.
다시금 떠오른 그 기억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꺼내어 볼 수 있다.
완벽하지 못한.
상처의 기억.
그 불안정한 미완성 속에서 나는 다시금 조금 더 성장한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던지 간에 내 자신이 그렇다.
그 미세한 감정의 변화는 내 자신이 알고 있고, 그 누구에게도 평가받을 필요 없는 내 것이다.
상처의.
때로는 마음 가득히 부풀은 웃음을 채웠던 나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되돌아보면. 웃음의 기억, 아픈 기억. 그 수많은 감정의 변화들은 내 삶의 퍼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퍼즐을 쪼개고 합치며 마음 가득히 아름다운 색을 가진 내 삶의 퍼즐을 조금씩 더 완성해 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 자신이 알고.
내 마음안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채우기 위해서 난 오늘도 마음을 열어 내 안의 퍼즐을 바라본다.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정갈한 액자에 담긴 내 마음안의 퍼즐을 한번 바라보고 “이 삶은 소중하였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소망이 있다면 초록의 싱그러운 작은 정원 같은 빛을 냈으면 좋겠다.
소망하며 숨을 내쉬는 오늘 하루를 더 살아나간다.
내 삶의 퍼즐 한 조각.
그 소중함이 바로 오늘이고.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