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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람별빛 Oct 08. 2020

산만한 디자이너의 인생 살기

삼수생, 전과, 퇴사만 20번, 이민... 산만한 디자이너의 인생 이야기

나는 매우 산만한 사람이다.


삼수생, 전과생, 여러번의 이직, 해외 이민.. 이 모든 것들이 10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 인생그래프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지만, 지금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삶의 균형을 잡게 되었다. 멋진 선배의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산만하게 살았어도 생각보다 밥 세끼 굶지 않고 먹고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날라리 삼수생


거듭되는 미대 입시 실패로 인해 시작된 삼수 생활은 어려서부터 미술을 잘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보잘것없는 실력이었다는 사실을 톡톡히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러한 생각은 나에게 큰 자존감 하락과 절망감을 안겨 주었고, 그로 인해 나쁜 생각이지만 죽을 생각으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어차피 죽을 생각이라면 내가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해보고 죽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일 처음 했던 일은 홍대에 있는 가장 유명한 클럽에 가서 해드 디제이에게 돈 안 받아도 되고 궂은일도 다 도맡아 할 테니 꼭 수습생으로 받아달라고 무릎을 꿇으며 사정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홍대 클럽으로 매일 저녁 6시에 출근해서 아침 7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거듭된 입시에 지친 나에게 신나는 음악과 조명은 참고서 속 활자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활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엔 조명담당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음악의 비트를 익히는 연습을 했고, 더 나아가 6~9시 사이의 손님들이 없는 시간대에 조금씩 디제잉을 시도하며 디제잉의 기본을 배워 나갔다. 아주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계속 이 업계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한 인디 DJ가 자신의 음악에 랩을 해달라는 제안을 해서 렙 피처링을 해주게 되었고, 또 큰 규모의 DJING 컨프런스에서 해외 DJ의 영어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나름의 성과를 얻었지만, 다양한 음악 관련 아픈 경험을 하면서 나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술세계로 돌아가다


나는 그림을 잘해서 예고를 들어갔지만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고, 음악을 매우 좋아했지만 음악을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나의 친정과도 같은 미술전공으로 돌아가 막판에 수능을 보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공예과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학교 수업은 정말 재미가 없었고,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장비와 미술 용품들을 구입하라고 부추겼다. 이미 학비로 학자금 대출을 받은 나에게 지속되는 추가 비용에 대한 권유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컴퓨터만 있으면 되는 디자인과로 1학년 말에 전과를 했다.


새로운 과에서 적응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기에 2학년 동안 F를 무려 5번이나 받았다. 디자인과는 순수미술과 달리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미술이기에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할 줄 아는 능력이 필수적이었지만 예고-DJING-미대로 이어지는 나의 예술인생은 너무 니치(Niche) 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혀 보고자 다양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파티플래너, 경영학회, 연애칼럼니스트 활동, 공모전, KT&G 마케팅 리서처, 구글코리아 대학생 마케터, 스타트업 창업 등등 수없이 많은 일들을 했고 덕분에 미대생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생활고를 겪게 되면서 나도 그 빛을 청산하기 위해 생활전선으로 띄어 들어야 되게 되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면 정말 가리지 않고 했다. 한 번은 짧은 치마와 나시티를 입고 강남역 근처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면 시간당 2만 원을 준다고 해서 전단지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늦은 밤 강남 유명 클럽 앞에서 픽업아티스트 양성학교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자니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고 내 전공을 살려 디자인외주알바를 시작했다. 다행히 외주도 제법 들어오고, 학교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회사에도 취직하게 되어 근근이 살아갈 돈을 벌 수 있었다.


나는 산만한 성격이 좋다


졸업 후, 작은 곳에서부터 큰 회사까지 다양한 직무를 돌며 또 한 번 산만한 시기를 지낸 뒤, 이제 어느덧 5년 차 디자이너가 되었다. 전공 외의 분야들은 뭐하러 배우고, 왜 맨날 이상한 짓만 골라서 하고 돌아다니냐고 주변에서 핀잔을 참 많이 들었지만, 이 덕분에 나는 실패에 대한 겁이 없어졌고, 나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출할 수 있으며,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함이 생겼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인 캐나다 지사로 발령을 내렸을 때 선뜻 가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또 전혀 경험해본 적 없는 다른 업계로 이직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산만했던 지난날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산만한 성격을 주의력이 부족하고 끊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산만한 성격이 절대로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산만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직 내가 하고 있는 행위 속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보면 정답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정답을 향한 지름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왜냐면 인생에는 한 가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산만한 내 성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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