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여행기 (1)
문득 화창한 날, 고령에 사는데 고분군을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고령의 대표적인 명소를 아직도 못 갔다니. 벌써 고령에 들어와 산 지도 3개월이 가깝게 흘렀는데 정신없이 사느라 여유를 잃고 있었나 보다. 얼른 친구들을 소집했다.
내일 아침에 고분군 정복할 파티 구해요~ 낚인 친구들이 둘. 나까지 셋. 우리는 시작은 정말 상쾌하고 즐거이 산 초입을 디뎠다.
단풍이 정말 예뻤다. 한창 가을이 무르익은 산은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선명한 색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산 입구에 들떴고 후에 닥칠 고난을 예상하지 못했다.
고분군은 멀리서 볼 때는 정말 웅장하면서도 완만한 굴곡을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산책처럼 슬금 다녀올 수 있다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 좀 컸다. 설마 아무것도 없는 땡볕에 경사각이 80도에 가까운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의 크나큰 착각은 낭패나 다름없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산은 정상까지 쭉 이어졌다. 기어오르다시피 구부정하게 산을 향해 올라가던 중이었다. 지면이 얼굴과 맞닿을 정도였다. 헉헉거리며 우연히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면 이런 장관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천을 따라 자욱하게 피어오른 안개의 경계선 위에 떠 있는 섬이 보였다. 이런 육지에 섬이라니. 하지만 통영 해상에 드문드문 떠 있던 섬과 달리 하늘 위에 떡하니 섬이 있었다. 상상을 마구 자극하는 광경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 섬 라퓨타 같기도 하고 그것과 달리 좀 더 신화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고대 가야인들은 이 광경을 보며 성스러움과 경외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고분군은 모든 위치에서 옛 가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중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가 말했다. 순장했던 사람들도 다 이 길을 따라올라 왔을 텐데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고. 정말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순장이 풍습이니 언젠가 마음의 준비를 하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당사자라면 태연할 수 있었을까. 현대인으로서는 읽을 수 없는 마음이기도 했다.
감탄은 짧았다. 우리의 앞길은 아직도 높은 경삿길이었고 쉴 수 있는 자리는 저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기까지만 가자며 필사적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나무 밑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고령읍내를 바라보니 그래, 마치 신선이 된 느낌도 든다. 땀을 식히는 바람도 시원하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도 시원스럽다. 한참을 멍하니 아래로 시선을 던지다 다시 위로 고개를 돌렸다. 정상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그래도 고분군에 올랐는데 정상까지 오르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쉬어서 그런지 전보다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우리는 남은 기력을 모아 한 걸음씩 걸음을 뗐다. 언젠가는 닿겠지.
고분군 정상은 유물이 나왔던 큰 왕릉이 존재한다. 아직도 현재 발굴하고 있는 현장도 보이고…. 높은 곳에서 가드레일 하나 없이 걸으려니 고소공포증이 있어 미약하게 현기증이 났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간 곳은 여러 길 중에 고작 하나였다. 경사가 젤 높은 곳이 아니었나 싶은데 다음번에는 다른 길도 정복하기로 약속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자칫 무릎을 다칠 수 있으므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디뎠다. 올라가느라 힘들어서 몰랐지만 신선한 공기가 폐를 상쾌하게 해주었다. 이 산뜻한 공기 덕분에 오르는 길에 숨이 가쁠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느 산과 달리 탁 트인 풍경도 그렇다. 내려올 때는 그 아름다운 풍경들이 반기는 듯했다. 처음만큼의 감탄사는 아니지만 내려오느라 조금의 안정감을 찾았을 때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백미다. 고령을 방문하실 때는 고분군에서 건강한 걷기도 하며 옛 가야인의 정취를 찾아보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