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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공녀 Nov 02. 2022

까사 데 시고르

즐거운 나의 집

가을은 산이 물들어 어딜 봐도 아름답다. 차를 타고 고령 읍내를 가는 내내 나는 감탄을 했다. 이렇게 명확한 계절의 선명함이 너무 좋아서. 눈이 닿는 곳마다 단풍이 가을을 알렸다. 앞차가 천천히 서행했다. 2차선 도로에서 느리면 대부분 앞질러 가지만 난 느긋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풍경도 한몫했지만, 동네 어르신이 운전하는 거로 생각하면 앞질러 갈 수가 없었다. 도심이었으면 구시렁대며 추월했을지 모른다. 길지도 않은 거리를 짜증 내며 차선을 바꿨겠지. 하지만 시골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변에 이렇게 볼 것도 많고 감상할 것도 많은데 일부러 빨리 갈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여유로운 시골 도로마저 사랑스럽다.


은행 나무 가득한 시골길

게다가 빠른 속도로 가면 자전거 탄 사람과 전동차를 모는 어르신, 정차된 차를 미처 못 볼 수도 있으니 도심보다도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천천히 가도 어쨌든 목표에 다다르니 내가 조금 더 일찍 나서면 되는 일이다.


예전의 나 같으면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절대 몰랐을 것이다. 운전하고 나면 몰려오는 피로감, 집에서 먼 거리를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드라이브라는 걸 왜 즐기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을이 물들어가는 도로를 보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고작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저 이렇게 아름다우니 유명한 명소는 얼마나 더 예쁠까.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마당에 차를 대놓고 짐을 내렸다. 이전 도시에서 살 때는 주차 자리 찾는 것부터 스트레스받았고 3층까지 낑낑대며 짐을 가져가야 했었다. 지금은 문 앞에 바로 차를 댈 수 있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집주인들이 뛰쳐나가지 않도록 집안으로 몰아넣고 짐을 놓았다. 호기심이 충만한 집주인들이 짐에 코를 박고 검사를 한다. 그동안 나는 손을 씻고 청소를 한다. 집 창밖으로도 가을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빨갛게 익은 열매들이 집 앞 정원수였고 조금 더 멀리 가로수의 은행들이 집안에서도 보였다.


대구의 집 앞에도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있지만, 가을은 정말 은행 냄새로 힘겨운 계절인 줄 알았다. 떨어져 내린 은행이 관리가 안 되어 나뒹구니 행인들이 밟거나 차가 밟고 지나가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도시의 가을이란 으레 그런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수북이 쌓인 처치 곤란한 낙엽들과 은행나무에서 풍기는 냄새.


시골은 마른 지푸라기 냄새와 가을의 햇볕 냄새가 난다. 푸른 하늘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구름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이런 데서 살게 되었다.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아이들도 잘 적응했고 나도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집주인들인 두 고양이가 정말 스트레스 하나 없이 집에 훌륭하게 적응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실수로 문이 열렸었는데 어디를 갔다 왔는지 도깨비 풀을 잔뜩 묻히고 집에 돌아왔다. 어두운 밤이라 제대로 찾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걱정과 무관하게 집 밖에서 문을 열라고 야옹~한다. 딸의 말대로 부부동반 여행을 갔다 온 것처럼 태연자약한 행세였다. 그 이후로 집주인들의 산책에 대해 걱정을 접었다. 수시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불안감에 산책을 내보내지는 못하고 있다. 도심에서 살 때와 다르게 워낙 편안해 보이는 기색에 한시름 놓았다. 가끔 글을 못 쓰게 방해를 하지만 어쩌랴, 나는 집사인 것을.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를 전 집에서 아직 가져오지 못해 본의 아니게 문명과 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하루하루가 즐겁다. 물론 쌓여가는 빨래 더미를 볼 땐 안 즐겁지만.

집사를 방해하는 집주인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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