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의 발목을 붙잡나요?

by 하늘자까

한 달간 쉼 없이 달렸다. 컴퓨터 화면과 눈이, 자판과 손목이, 마우스와 손가락이 물아일체 되는 것이야 말로 사무직의 숙명인지라 피곤함이 차오르던 참에 드디어 여유 있는 주말을 맞이했다.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해진 방 안은 이미 해가 중천에 있음을 알려주었고 이불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몸뚱이는 그것을 모른 척했다. 지인과 메신저를 주고받느라 분주한 손가락만이 이 몸뚱이의 주인이 깨어있음을 알려줬다. 지인과 나누던 대화의 포커스는 삶의 방해 요소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는 이야기, 마음을 돌보기 위한 조언 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대화 취향을 가진 사람과 종종 나누는 이야기들이다. 이불속 따스함에 푹 절여져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핸드폰 속 오가는 말풍선들은 짐짓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인은 말했다. “새로운 도전 앞에 너를 방해하는 게 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그는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의 가장 큰 방해 요소라고 털어놨다. 이어 자신의 주변인들에게도 같은 물음을 했을 때, 할 수 있다는 마음보다 ‘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지금 내 모습은 부족한 것 투성인데, 실패하면 어떡하지’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는 것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지만 각자 주어진 삶 속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과 (비록 그것이 나 자신일지라도) 싸우고, 인내하고, 견디면서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나는 지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대화를 끝맺었다. 조금 더 눈을 붙일까 하다가 창을 열고 시원한 가을 공기를 담뿍 들이마셨다. 머릿속에 생긴 틈을 비집고 다시금 들어온 생각이 가볍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을 향해 도약하는 발걸음에 제동을 거는 방해 요소. 머릿속에 몇 가지가 떠올랐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다고 인정할 만큼의 답인지도 고려해야 했다. 바로 답을 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물음이었다.


방해 요소를 찾아낸 다음 그것을 제거하고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길 바라지만 이건 ‘몬스터 잡기’와 같은 미션이 아니다. 그 방해 요소는 내 깊숙한 곳에서 이미 익숙해졌다 싶을 만큼의 모습과 습관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 찾아내거나 제거하기란 더 아프고, 더 어려울 것이다.


지인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상처에 대한 두려움, 자기 불신 등을 다시 읽어봤다. 한 때 느껴봤던 감정들이라 남일 같지 않았다. 연민보다 공감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사실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내 방해 요소를 안다고 해도 그것을 제거하거나, 대체되는 무언가를 하는 등 어떤 좋은 결과로 끌고 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포기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 쉽게 대답하진 못했던 듯싶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포기하진 않겠지만, 언제 내가 이뤄낼지 모르겠어서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자기 불신은 나에게도 여전히 존재하는 듯하다. 개복치 같은 예민함으로 우는 일도 많고, 넘어지는 일도 많은데 내 인생만큼은 내가 제일 꼭 안아주고 사랑하고 싶어서 끝없이 고민하고 살아내는 모습을 관조해 본다.


지인의 메신저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내리지 않는 상태다. 오랜만에 맞는 여유로운 주말에 나에게 이런 심오한 주제를 던져 놓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내 삶의 방해 요소, 그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길까지 알려주려나. 물론, 그것을 알고도 행하느냐는 오로지 내 몫으로 남겨져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태어난 김에 사는 인간이 아닌 증거의 발버둥을 치게 해 주어서 약간은 고마운 마음.


원래부터 내 것이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도 모를 불순물 같은 것들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었는데, 일렁이는 물음 하나가 그것들은 여러 가지 문장과 단어들로 떠다니게 만들었다. 둥둥 떠다니는 것들을 느끼고 있노라니, 정리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언젠가 정리해야 할 것들, 그 일렁임이 오늘이었을 줄은 몰랐지만 이왕에 마주한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그것을 진실되게 드러냈을 때, 분명 지혜로운 것들이 내 마음 잔잔히 만들어 줄 것임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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