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을이다. 봄과 여름도 옹골차게 즐기지 못했는데 가을이 왔다. 출퇴근길 뺨을 때리는 바람도 제법 차갑다. 동네 뒷산을 한 바퀴 돌 때면 추워서 괜히 더 발걸음이 빨라지고 바닥에 떨어진 비틀어진 낙엽을 보며 일부러 버석거리는 소리 들어보려 밟아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제 시월이 된 건지. 이제 약 두 달만 지나면 치열했던 2020년도 작년이란 이름 아래 추억 한편에 쌓이게 될 터이다.
일 년의 마무리를 준비하라 알리는 계절이 피부로 느껴질 때, 종종 거리던 걸음을 멈추고 싸매던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물었다. “올해는 어땠어?” 이 물음을 지인들에게도 묻노라면 다양한 답이 들려온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콕’ 라이프만 전전했던 이야기, 첫 직장의 강렬한 충격으로 인해 마음고생했던 이야기 등등... 다들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마저도 아름답게 보이는 청춘인데, 어쭙잖은 위로를 삼키고 “맞아.” 하고 공감의 끄덕거림만 할 뿐이었다.
내게 이 질문을 던질 때 나는 “올해는 진짜 열심히 산 해.”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물론 고3 때 대입 준비를 하던 나날들과 대입 후 학보사 생활을 빼놓을 수 없지만 2020년은 내게 조금 특별했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재학 중에도 장르 가리지 않고 글을 써왔는데 대학생 때 인간관계에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지금이야 험한 세상 미리 경험한 셈 치자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트라우마의 잔재가 지금까지도 남아있을 정도라,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글을 쓰지 못했다. 졸업 후 약 4년간 각종 서비스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삶을 이어나갔는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목표인지라 내 꿈을 생각할 겨를도, 글 쓰자고 진득이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대학교 때 친구를 만났다. 근처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던 친구는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왔던 것이다. 아는 체할까 말까 고민하던 내 표정을 읽은 식당 사장님이 가서 인사하고 오라고 부추겨 메뉴 주문을 받으러 가며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 더욱 반가운 얼굴인지라 조금은 오버스럽게 인사를 하고 급히 연락처를 교환했다.
몇 번의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에 우린 약속을 잡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가 미디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친구도 나의 학보사 경험을 알고 있었기에 나도 비슷한 분야로 진로를 설정하지 않았나 궁금해했다. 졸업 후 4년 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다 그때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오름을 느꼈다. 친구는 글쓰기 관련한 각종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을 알려주었고 나는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며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때가 2019년 12월이었고, 그중 한 교육 과정에 합격해 올해 2월부터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마추어라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올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 다양한 감성도 느껴볼 수 있고, 내 감성이 예민함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글에 녹여낼 때는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되는 것도 미치도록(!) 좋았다. 그 무엇보다도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인 삶에서 원하는 것이 생긴 삶은 내게 살아있음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만들었다.
두 달 남짓한 2020년, 더욱 옹골지게 글을 쓰고 내년에도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