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를 안아준 적 있나요?

by 하늘자까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선 다 같이 간식을 나눠먹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은 포도송이가 나왔는데, 쟁반에 몇 개씩 담겨 있었다. 쟁반을 든 유치원 선생님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일제히 포도 앞으로 달려갔다. 원처럼 모여 앉아 손가락으로 한 알 집고 떼어서 오물오물 먹다가 씨를 버리는 식이었다. 쟁반이 한 3개 정도 있었나. 그 주위를 둘러싼 친구들을 굳이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포도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너는 왜 안 먹어?”라고 물었을 땐 그냥 친구들이 너무 몰려들어서 틈이 없었다는 식의 비슷한 답을 했다.


친구들이 장난감으로 놀고 있을 때 모퉁이 쪽 유아용 미끄럼틀에 들어갔던 기억도 난다. 그 안에 들어가면 어린아이의 몸집 정도는 충분히 가릴 수 있었다. 몸이 안 좋은 날엔 그 안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건지, 조용히 쉬고 싶었던 것인지, 어렸을 때라 그리 깊은 생각까진 못 했고 거의 본능에 의한 행동이지 않았나 싶다. 미끄럼틀 기구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선생님은 “어디 아프니?”라며 내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선 “열이 좀 있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좋게 말해 독립적인 아이, 실상은 타인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7살의 뇌로는 약간 미묘한 감정으로 느껴졌을 뿐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무언가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지도 못했다. 나이를 한두 살 먹어감에 따라 다양한 학급 친구들을 만날 때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왠지 불편했다. 단지 그 이유 하나로 급식을 거르기도 했다. 그 상황이 불편하다면 피하면 해결되는 줄 알았기에 친구들과 불화가 생기기라도 하면 입 뻥끗 못하고 무리에 묻히거나 그냥 가만히 있었다. 자책하거나 타인을 원망하거나 복잡한 마음이었으나 그걸 꺼낸 적은 없었다. 유치원 때는 나를 가려줄 미끄럼틀이 있었지만 서른 여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모인 반에서는 나를 가려줄 그 무엇도 없었기에 뭔가 불편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도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뭔가 인생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19살의 나는 ‘인생 리셋’이라는 목표를 두고 대입 준비를 했다. 무난한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동기. 선후배와 새롭게 인생을 다시 설계해보고자 했지만 한 살이 더 추가된 것 말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렸을 적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은 이제 더 이상 숨는다고 그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동기를 만나게 되어도 혹여 그 관계가 깨질까 너무 조심스러웠다. 어떤 관계에서든지 나는 힘들어졌고 상대방도 그에 대한 배려를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시험 스트레스보다 더 큰 부담이고, 상처가 되니 마음의 병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 심장이 뛰고 뱃속까지 공기를 들이마셔도 숨이 차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동생의 손을 붙잡고 응급실로 가봤지만 민망하리만큼 내 육체는 건강했다. 그때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조금 이르게(?) 마음의 병을 알게 되어서 몇 번의 상담과 서적 등을 통해 증상은 더 이상 심해지지 않았다. 그 일이 벌써 4년 전이다. 그때와 같은 증상은 나타나지 않지만 불편한 상황에 다시 처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길을 우회해서 돌아가거나 친구 옆에 바싹 붙어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위험상황인가 하고 내 심장이 반응할라 하면 조용히 이야기한다. “괜찮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너를 지켜줄 사람이 더 많은 걸.” 하면서 최대한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


불편하고 두려워져서 눈물이 차오를 땐 7살의 어린 내가 나타난다. 그 뽀글 머리 아이는 성인이 된 나에게 말한다. “나 숨고 싶어! 나 불편해!”라면서 입을 달싹이다 이내 무릎을 그러 모이고 웅크린 자세를 취한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아이였는데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었다. 그 아이, 참 아팠을 텐데 ‘나 아프다’는 말 한마디 떼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감당하기 벅찬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던 나를 보며 쉽게 다가오진 못했을 것이다. 위로를 받고 싶어서 여태껏 기다려 오다가 드디어 내가 편안한 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찾아온 어린아이, 어린 나.


그 말 한마디를 입 밖에 내기까지 이십여 년이 흘렀다.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생채기를 가지고 그렇게 기다려 왔다. 웅크린 채 아무 말도, 고개 한 번 들지 않던 뽀글 머리 아이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틈 없이 안아줬다. “얼마나 아팠니?”라고 물어보며 힘들 때곤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고 안아주겠다고 말했다. 현재도 독서의 5할이 마음과 심리학에 관련된 책이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기를 몇 번, 아니 몇 백 번을 더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나 걷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조금은 성장했다고, 잘 살아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어린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