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내 범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살아온 환경, 세월, 만난 사람들이 다른데 어떻게 기대대로 움직여 주길 바라는지. 근데 그 어리석은 짓을 하는 인간 중 하나가 바로 나다. 조금은 내편이지 않을까 싶으면 어김없이 기대하고 되고, 조금은 웃어주지 않을까 하고 내심 바라게 되고, 그러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때 나는 또 나댔다는 생각에 자신감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어떤 이는 말한다. “유진 씨는 원래 말이 없나 봐요?” 이러한 질문에 나는 “어른들하고 말을 잘 못해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은근히 재밌다, 너.”라고 말하고 나는 편해진 분위기에 장난과 개그를 치다가 ‘대체 어디 있다 지금 나타났느냐’고 말하고 싶을 걸 꾹 참는다. 누구와 마주 하느냐에 따라 성격도, 말의 내용도 달라지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사막에서 바늘 찾듯 편한 상대를 만나게 되면 내 마음도 덩달아 편해진다. 그런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가끔은 너무 기적 같아서 기쁨에 겨워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런 평온한 인생이 쭉 이어지리란 막연한 행복에 취해 가끔은 좀 더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다.
조금은 짓궂은 장난을 치면 개중 5할 정도가 홈런. 나머지는 묵묵부답이다. 사실 불편한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업무상 꼭 필요한 소통이 아니면 입을 꾹 닫고 있는데, 소중한 사람에게는 웃겨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같다. 웃음 짓게 만들고 싶은데 예상한 반응이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 상황판단을 못한 건지, 포인트를 잘못 잡은 건지, 오만가지 원인을 끄집어내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무음 모드로 돌입한다.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 마음을 결코 의심하진 않지만, 또 사람에게 기대했다는 생각에 실망감까지 오는 것이 문제다. 성격이 예민하든, 불가항력적 사건이 발생하든,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아본 사람은 그 트라우마가 꽤 오래가는 것을 경험한다. 오랜 시간 일상을 잘 유지해 나간다고 해도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하면 어김없이 그때 그 사건이 떠오른다. 나도 그 과정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이라서 사람들의 반응을 과하게 살핀 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각은 ‘역시 사람한테는 기대하는 게 아닌데, 나 또 기대해 버렸네.’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부끄럽게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라서 그 뒤로 몇 단계를 더 거치며 생각을 바로 잡는다. 먼저 잠시 멈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깊이 고민한다. 책을 들춰보며 이와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던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이해한다. 결론은 비슷하다. 나와 상대방 사이의 악의는 없었고 그냥 살아온 길이 달라서 그렇다는 걸, 그리고 인생이 원래 넘어지고 일어서고의 반복이라는 걸. (상대방을 웃기지 못해서 인생까지 거론하는 내 모습을 보면 가끔은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없다.)
상처 속에 홀로 아파하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내 인생에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를 웃게 만들고, 위로해 주고, 따끔한 조언까지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받은 사랑 하나만큼은 절대로 잊지 말자고 다시 마음을 잡는다. 그리고 또 하나 다짐하는 것은 편하고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범주에 끼워 넣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얽매여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지키면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그렇게 살아보자고 마음먹는다. 살다 보면 같은 상황은 어김없이 반복되겠지만 언젠가는 올바른 마음의 습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언제나 있는 힘껏 일상을 유지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