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아주 잠겨버리고 싶다. 내 마음은 밀려오는 파도를 감당치 못하고 남은 방파제들마저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내가 글 속에 잠겨버리면 파도가 친들 그리 아프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저 어딘가로 몰두하고 싶고 잠겨버리고만 싶은 마음이다. 파도는 내가 오지 말라 해도 안 오는 존재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게 예정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그곳에 서있고, 그 파도는 정확히 내게 불어 닥치리란 것이. 나는 속절없이 파도를 맞는다. 이젠 내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기에 글에 잠기어 내 마음만큼은 누군가 봐주고 그 속에 잠긴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랄 뿐이다.
전에는 나를 불편하고 두렵게 만드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게 호소했다. 힘든 상태인데 나를 좀 봐줄 수 있어? 하나 타인은 그만큼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때 책임에 대해 배웠다. 타인에게 기댈수록 상처 받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이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진심을 내보일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그동안 봐왔던 서로의 부족한 모습들 속에서 지금이라면 믿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용기를 낸들 그것은 희뿌연 안개와 같은 것이기에 결국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이고 말았을 때 사람에게 기대려 했던 내 마음을 탓하게 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자신이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취급을 당했으며 자신의 사고가 얼마나 논리 정연하고, 인간적이며, 흠잡을 데 없는지, 상대방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인간인지 증명해 내기 위해 열을 올린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었다. 서로가 비정상적인 인간이고, 그런 부족한 점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나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빠르다.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그 속에서 그들의 ‘부당함’과 자신의 ‘온당함’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쏟아지는 감정들을 받아낸다.
이타주의의 흉내를 내보려고 현자처럼 생각하고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기를 몇 번인가. 어쭙잖은 이타주의 흉내 그만 내고 너에게 어울리는 그거, 염세주의자였잖아. 너. 라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마음의 소리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나조차도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거나 동의의 의사를 내표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일이란 너무나 손쉽게, 빠르게 이뤄진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는 곱절로 힘들다.
‘마음이 힘들다’는 이 말 안에는 얼마나 많은 고뇌와 슬픔과 고통이 잠겨 있는가.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그간 쌓였던 감정의 골이 함축적으로 담긴 것이기에 개인마다의 부피는 다를지 언정, 질량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누군가에게 이 한 마디 털어놓을 때, 타인과 나 사이의 틈까지 무시해 버린 채 이 마음을 다 이해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심 마음을 터놓은 사이가 됐다고 여겨지면 나는 어김없이 바보가 되어 또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다. 사람에게 이 마음 온전히 이해받길 바라는 바보가 되어 또 그러게 덩그러니 놓이게 된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나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도 중요하게 여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털어놓은 것을 인정한다. 상대방에게 이해받지 못한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만큼은. 나만큼은 이 마음을 열렬하게 사랑한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예민함과 사소한 것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이 세심한 것들을 이해받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 결국에 나 자신만이 알아줄 수 있는 내 마음. 나는 또 이렇게 살다 누군가에게 이 마음 위로받기를 기대하고 상처 받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야 단단함이라는 걸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단함이란 것을 깨달을 때까지, 온전히 느껴볼 때까지 나는 글을 써서 나 자신에게 명확히 보여 줄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 하나하나를 살아나게 만들어서 강한 생명력을 가진 한 인간임을 끊임없이 보여줄 것이다.
오늘도 글에게 위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