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록집’에 지금까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썼던 것은 미래를 확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미래에 더 큰 가치, 막연한 긍정일 뿐이라도 이번만큼은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올해의 좋은 갈무리를 짓고 내년의 에너지 비축을 위해서 꿈꾸는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만큼 유쾌한 일이 없다. 행복의 조건이라 한다면 개인차가 있을 것임으로 구체적인 것들을 설정하지 말고, 딱 30일이란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해볼까.
대략 한 달간 사회적으로, 혹은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 나에게 요구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몰두’이다. 30일간의 태도는 ‘몰두’로 설정하고, 삶의 형태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알맞을 것 같다. 풀내음 가득해 들이마심과 동시에 폐 구석구석에 전달되길 바라는 공기, 초록과 연한 파랑의 배경, 들꽃과 고양이 한 마리면 충분하다. 그리고 매일을 먹고 일하고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현재의 삶도 먹고 일하고 쓰는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만….
현생 사무직 직원인 나에게 일이란 듀얼 모니터와 눈과 손목의 피로를 빼놓을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주어진 30일만큼은 하루하루의 날씨를 온전히 느끼기, 고양이 자는 모습 관찰하기, 정성 들여 요리해 지인과 함께 먹기 등이 일이었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 컷의 사진과 글로 남기기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삶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오전 8~9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한 ‘아점’을 차려 먹은 뒤, 여전히 잠에 취한 고양이를 실컷 구경한다. (5년간 집고양이의 집사 노릇을 해온 나로서 아침에 비몽사몽 하는 고양이가 제일 귀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노트북 전원을 누른다. 올해 8살을 맞아 켜지는 데만 10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바리스타 흉내를 내본답시고 드립백을 뜯을 것이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끝나는 것을 폼 잡고 따라 얼음 가득 넣고 홀짝이겠지.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다가 한 줄, 두 줄 쓰고 어느새 한 장을 가득 채워가는 화면을 인식한다. 마무리를 짓거나, 아니면 나중에 다시 손보거나 둘 중 하나의 결론에 이르러 쓰던 글을 정리하고 화면을 끈다.
그리고 오후 3시쯤에는 집 주변을 산책한다. 오늘은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을 품고 있는지 눈에 담으며 가을이라면 낙엽 밟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신선한 공기를 담뿍 들이마셔 집 안에서도 한동안 찬 숨이 내뱉어진다. 그리고 소일거리를 찾는다. 그것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일거리다. 밀린 빨래를 하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의 집안일일 수도 있고 미니어처 정원 만들기, 직소 퍼즐 맞추기 등의 취미 생활일 수도 있고 초대한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일일 수도 있다.
저녁이 되면 초대한 지인들이 올 것이다. 캔들과 작은 알전구를 켜서 분위기를 내고 소박한 음식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동년배들과 ‘라떼 이즈 홀스’ 이야기를 하다가, 연애 상담도 하다가, 지나간 과거에 대한 농담 섞인 한풀이와 막연한 긍정을 품은 미래를 이야기하겠지. 지인들이 돌아갈 시간이 되면 준비한 선물을 안겨주고 배웅한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말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시작한다. 아마도 중간쯤 정리하다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누워 쉬고 있을 게 그려진다.
책장에는 중간쯤 읽다가 그대로 꽂힌 책이 3~4권쯤 된다. 그중에 한 권을 골라 20페이지 정도 읽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해 밑줄을 칠지도 모른다. 언제 다시 펼쳐 음미해 볼 진 알 수 없으나 인덱스 스티커로도 표시해 둔다. 그리고 감기는 눈꺼풀의 무게를 느낀다. 책을 읽으면 졸린 건 진리에 가깝다. 고양이도 창가 언저리에서 밤 풍경을 구경하다 이내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내일도 눈 떠지는 대로 일어날 것을 알지만 그래도 7시에 한 번 알람을 맞춰 놓아 본다.
평온함 그 자체로 행복한 30일을 꿈꿔봤다. 현생에서는 평온함이란 걸 마련하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언제까지고 걷게 될지 모르는 여정이지만 인생은 길다고 하니 한 번 심호흡 크게 하고 걸어보려고 한다. 힘이 들 땐 잠시 멈추고, 마주하는 것들을 사랑할 에너지를 그러모아 다시 걸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