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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자까 Jul 05. 2021

작은 버튼의 현혹

요즘은 유튜브를 자주 본다. 현대사회에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어김없이 유튜브 생각이 난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은 물론이고, 주말 아침에 눈을 뜨고 한두 시간은 유튜브 영상을 본다.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있어서 어딘가 뻐근해짐을 느끼면 그제야 일어나는 식이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도 보고, 비가 와서 흐릿해진 날씨를 변명삼아 누워있다가 어김없이 유튜브를 틀었다. 돌이켜 보면 멍 때리고자 할 때, 무언가 몰두하고자 할 때 어김없이 오른손은 뭉특한 네모 속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유튜브로 보는 채널은 다양하다. 사실상 코로나19 이후로 재택근무를 시작하고서 유튜브 보는 시간도 늘어났으니 거의 1년을 살펴본 바, 보는 채널이 돌고 돈다는 것을 알았다. 유행이 돌아온다는 말처럼 말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동물, 아이돌, 드라마 클립, 예능 클립에서 크게 못 벗어난다는 걸 알았다. 중간중간 과학, 철학 등 뭔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채널을 구독하기도 했는데 궁금증만 해결하곤 그새 흥미를 잃어버렸다. 지금 주로 보는 영상은 아이돌에 관한 것이다. 가십보다는 그들의 무대, 음악, 예능 영상들을 두루두루 섭렵한다. 워낙 재능 있고 끼도 많고, 미모도 출중한 아이돌이 많다 보니 누군가 컴백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유튜브로 순회하는 식이다. 그중 힙한 분위기 가득한 노래를 들으면 나도 가사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잠시 그 기분에 취하기도 한다. 영상들을 순회하다 보면 물론 시간은 ‘순삭’된다. 꽤나 오랫동안 영상을 봤지만 이상하게도 어플을 닫으면 그 힙한 기분들은 어디로 가는지, 현자 타임을 갖게 된다.  

   

서두에서도 말했듯,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를 틀게 되는데 방금도 시간의 여유가 되어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차에 마음 한 켠에서는 유튜브를 틀고, 아이돌 무대 영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많이 본 영상들이다. 그래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과 시간을 놓칠 수 없어 노트북을 켰다.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에도 유튜브 생각이 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을 두고 생각해 보니, 무언가 더 깊은 성취를 위한 몰두 앞에선 더 빠르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취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유튜브는 버튼만 누르면 되고, 큰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도 아니니 손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내 취향의 채널을 구독한다고 해서 비판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글쓰기는 상대적으로 더 고민해야 하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자판을 두드리기 전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어디까지 풀어놓을 수 있을지, 정한 범주 내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유튜브로는 많은 정보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내가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해야 할 바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영상 시청 시에는 거의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영상이 정말 많고, 장면이 빠르게 바뀜으로 익숙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매번 새로움에 노출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화면을 끄고 나면 느껴지는 순간의 멍함과 휘발된 즐거움이 이해가 되었다.      


작은 핸드폰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이고 나 또한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이지만 마치 그 안의 세계가 다 인 것처럼 느껴지는 마음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기 때문이다. 이젠 유튜브 속으로의 몰두가 아니라 한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함을 느꼈다. 어디서나 멋진 무대 영상을 볼 수 있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니까 그것은 감사함으로 받되, 진정 몰두해야 할 일 앞에서는 시간이 걸릴지라도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나 자신이 존재함을,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작은 버튼 하나에 내어줄 수는 없다. 그래도 덕분에 “오늘은 뭐 쓰지”에 대한 결과가 나왔으니 나름의 순기능(?)을 맛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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