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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자까 Aug 30. 2022

글의 분위기는 가을비 소리에도 달라진다

가을비가 오는 날이다. 음, 사실 이번 여름은 폭우가 쏟아진 뒤로 급 종료된 느낌이다. 처서가 지났다고 해서 이렇게 금방 바람이 선선해지고 가을비가 내릴 줄은 몰랐다. 지인들에게 비오는 날은 좋아하냐고 물으면 거짓 ‘비오는 날 실내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빗방울이 떨어져 어딘가 부딪히는 소리는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공간이 익숙하고 쾌적하다면 더욱 그 감성을 즐길 수 있다.


퇴사 후 4주 정도가 지났다. 아직도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게으름 묻은 아침을 보내고 점심 즈음이 돼야 느즈막이 일어난다. 특히 비오는 날일수록 더욱 그렇다. 같이 산지 8년된 고양이가 그 시간쯤 되면 옆에서 서성이며 냐옹-하고 울어대는데, 밥달라는 소리다. 나는 더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데 밥달라고 외치는 고양이의 의지력도 상당하다. 결국 매일 내가 조금 더 버팅기다가 고양이 밥을 주러 일어난다. 한 번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고 난 뒤면, 다시 누워도 잠은 저만치 달아나 있다.


처음에는 이 게으름의 생활에 자책감도 상당했다. 전 회사도 자율출근제를 지향하던 회사여서 늦게 출근하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는데 점점 회사 규모도 성장하면서 그것마저 눈치가 보였던 것이 많이 힘들었다. 마치 야간자율학습제를 의무로 시행하던 고등학생마냥 자율출근제이지만 다수의 문화 속에 녹아드는 것이 더 중요했었다. 그런 눈칫밥의 영향인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평일이지만 늦게 일어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괴롭히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점차 이 생활에 패턴을 만들어내고 회사를 다니면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던 것들을 다시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 퇴사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조급함에 눈이 가리워 알바몬 어플에 한 번 들어가면 기본 3시간은 헤엄치고 그랬는데 이런 것을 보면 관성의 법칙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며 보낼까 싶었는데 역시 생각나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이다. 


일상 속 여유와 스스로가 삶을 꾸려가는 자유의지를 맛보면서 느끼는 것은 처한 상황과 마음의 여유에 따라서도 글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오후 4시 하고도 1분이 지난 시각인데 아마 이 시간에 회사에 있었다면 ‘빗소리가 평화롭다’는 커녕, ‘이따 퇴근할 때 바지 다 젖겠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그런 마음과 여유를 갖춰야 되는 것이란 걸 알게 된 시간들이었다.


뭐, 언젠가는 다시 회사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새로운 분위기의 글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왕이면 긍정적, 발전적인 분위기가 났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글로써 내가 느끼는 이 소중한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무언가 항상 급박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이뤄야 하는 요즘일수록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수용도 필요하겠지만 외부적 변화요소들이 내면에서 잘 융화될 수 있도록 평화로운 시간들을 꼭 챙겨주고 싶다. 예컨대 가을비 내리는 소리 듣기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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