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이다. 아직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높고 예쁘다. ‘이것이 바로 하늘색!’이라고 말하는 듯한 하늘과 오후 5,6시쯤이 되면 그윽하게 분위기를 잡는 색을 보여준다. 분홍색, 보라색, 주황색 등 모두 따뜻한 색이다. 가을은 하늘을 보는 재미도 있는데 걷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어제는 산책메이트를 만나 망원한강공원을 걸었다. 합정역 1번 출구에서 버스를 10분정도 타고 가면 금방 도착이다.
해가 지고 난 후, 망원한강공원에 가면 한강을 끼고 있는 야경이 보인다. 날도 좋은 날이어서 그 모든 풍경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사진을 찍을까 싶었지만 눈으로 담으면서 그저 걷기로 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몇 번 왔던 중에서 제일 사람이 없는 날이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조명 하나 두고선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물멍 때리는 좋은 장소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은 것을 봤다. 바람이 불고, 걷거나 대화하거나 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중 한 풍경이 되어 그저 걸었다.
생각해보면 망원한강공원은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와 관련한 추억들이 연이어 생각나곤 한다. 보통은 돗자리, 그리고 먹을 것이 빠진 적이 없다. 같이 왔던 어떤 동생은 그 당시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토로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을 묻곤 했다. 타인의 호소를 잘 들어주고 싶은 f형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엔 흥분해서 말하다가 나중가서는 대답은 하지만 ‘치킨이 맛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년 전쯤에는 취재기자 교육과정 프로그램을 같이 듣던 동기들과 프로그램 막바지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과자나 각자의 마실 것들을 사고 마땅한 돗자리가 없어서 종이든 신문이든 펼쳐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의 나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는데 이 공원은 언젠가 혼자와서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잠시 앉아 쉬고 싶다고 하면 쉬고, 이런 저런 이야기 등에 맞장구를 쳐주며 걸었는데 그저 저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문득, 내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그렇게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같이 와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어떤 장소를 경험해볼 기회가 생기면 여긴 혼자 다시 오고 싶다던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같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을은 정말 걷기 좋은 계절이다. 봄이 어느순간 가고 여름이 오듯, 가을도 어느순간 가고 겨울이 올터인데 이 짧고도 아름다운 계절을 이번엔 걸으면서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