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맛

by 하늘자까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면 처음에 주인공은 동네 바보로 나온다. 그런데 알고보니 북한의 남파 특수공작 5446 부대 최고의 엘리트 요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본캐는 엘리트 요원, 부캐가 동네 바보이겠다. 회사원의 위치에서 쓰라는 글을 쓰다가 내 글을 쓰고 있으면 왕왕 그런 영화 속 캐릭터를 상상하곤 한다. 물론 아직 엘리트 글쓰기 요원(?)이라고 칭할 만한 글쓰기 실력도, 그런 네임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게 나야! 디스 이즈 미! 라고 표현할 수단 하나 갖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페르소나라고 할까?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여러 페르소나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맞게 주어지는 역할이 있다.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에 맞게 움직일 때 조직은 굴러가기에 우린 주어진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낸다. 가족구성원 안에 있다보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직장에 있으면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해낸다. 친구들과의 만남이라고 해서 다 텐션이 비슷한 것도 아니다. 글쓰기 모임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 고등학생 때 알게된 친구들, 대학생 때 알게된 친구들... 모두 성격이 다르고 모임의 분위기가 다르다. 그에 맞게 나도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워낙 귀가 잘 팔랑이는 성격이고, 성인애착유형 테스트를 했을 때 타인긍정-자기부정 형으로 나왔기에 어떤 모임에 가서도 이런걸 해야 하나, 저런걸 해야 하나? 등의 흔들림이 많았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분명 내 마음에 종을 울리는 것들이 있었다. 특히 글쓰기 모임이 그러했다. 어떤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내다보면 "아유 00씨 이 부분 참 잘해~"라는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선 좀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나라는 사람 자체를 나조차도 평가절하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의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기준에 대한 말이지 나라는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개념을 잘 몰랐을 때는 흔들림이 많았는데, 글쓰기 모임을 갔을 때 글쓰기가 훌륭한 자기 표현 수단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나 자신일 수 있는 시간이 글쓰기 시간이라고 할까? 나는 호시탐탐 일상에서 글쓰는 시간을 노리곤 한다. 회사 업무가 많을 때는 그 갈망을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선 내 마음이 조급해 지지않도록 다독이며 그 기간을 보낸다. 회사의 업무는 언젠가 끝이 온다.. 는 메세지를 주며 기다리는 것이다. 다니는 회사는 일이 많을 땐 많지만 없을 때는 없는 구조이다. 한창 바쁠 때는 새벽이고 주말이고 노트북 앞에 매달려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스케줄 조정만 잘 한다면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주어진 업무를 보면 대강 몇시간 정도 투자하면 되겠다는 '각'이 나오는데 2년 정도 다니다보니 얼추 맞게 되었다. 업무를 마친 후 여유시간이 생각했던 근사치일 때, 그 시간에 글을 쓴다.


그리고 묘한 희열이 있다. 작게나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한다는 행위가 말이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아, 저 브런치에 글 좀 올리고 있어요."라고 할 수도 없다. 점심시간이 유일하게 모두 모여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인데, 모이기만 하면 "요즘 잠못이뤄. 일이 너무 많아.", "대표는 이런 것을 요구해. 정말 스트레스 받아." 이런 류의 이야기만 한다. 이런 부정적인 기류를 끊어내고자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종종 직장다니면서 책을 낸 사람들의 글에서 '직장에는 절대 알리지마라'는 구절이 적힌게 생각났다. 그저 눈치 보며 "하하 그러시군요."라고 할 뿐이다.


어디다 대고 "나 브런치에 글쓴다~!"라고 소리라도 치면 시원할까 싶다. 그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브런치. 그리고 글쓰기라는 행위다. 사무실 안에서는 적막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데 파티션도 서로의 업무 시간을 굳건히 지키기 위한 제 역할을 해내는 중이라 나는 브런치 숲에 대고 외친다. 물론,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하는 키보드소리만 날 뿐이지만 말이다.


남이 요구하는 글을 써줘야 하는 업무에 지치고 힘이 들 때 오아시스처럼 이런 시간이 내게 찾아와준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다."라는 메세지로 하나가 되는 장면을 왕왕 보는데 그것이 순간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줄 순 있어도 좋은 영향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부정적인 분위기의 전이같은 것일까. 같이 동조는 하되 회사 안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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