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여유를 갖자고들 말한다. 특히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일복이 터지는 기간이 있는데 그때 여유를 잊기 쉽다. 당장에 급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보다보면 상대적으로 급하지는 않지만 분명 중요한 일들을 뒷전으로 하게 된다. 괜시리 급한 마음에 "이것부터 끝내자!"하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업무에 몰두한다. 그리고 다른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는 다시 한 번 내가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던 처음의 마음을 상기시킨다. 작심삼일의 고배를 마시기도 여러번. 이제는 정말 뭐라도 꾸준히 써보겠다고, 당장 책을 내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니 만큼 글쓰는 습관 잡기를 원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점심 시간에 대표님에게 들은 "이번에 시작한 과정은 이번달말까지 끝내야 할 것 같아."라는 말에 계산을 때려보니 좀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조급해지기도 했다. 많은 시간을 업무에 할애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무언가 열심히 하는 그 행동하는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왜 하는가? 를 잊어선 안된다.
나는 종종 급하고, 중요한 일이 찾아올 때면 목적을 잊고는 한다. 열심히 일을 하고선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허탈함이 오는 것이다. 그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유튜브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회사를 다니지만 회사 다니는 것에 '현타'를 느끼던 나는 자신을 위해 글쓰기를 다짐했고 혼자서는 이끌어 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저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래도 대화가 통하니까 조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글쓰기와 친숙한 삶을 살아왔지만 쓰고자 하는 결이 비슷하고 무언가 관련 일에 도전해보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자연스러운 헤어짐 겪기를 반복하고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독서, 글쓰기 등으로 주된 키워드를 잡고 관련된 주제로 방을 만든 사람들에게 비슷한 관심사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한다. 여럿이 있는 단체방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 일대일방에 주로 찾아가곤 했다. 말을 걸었지만 묵묵부답인 방도 있었고 말풍선을 주고받았을 때 나와 대화 스타일이 맞지 않는 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몇 번 그렇게 하고나니 말을 거는 것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거리는 좀 있어도 대화의 결이 잘 맞는 분을 만났다. 통하는 대화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약속을 잡고 해당 장소로 나갔다.
아무렇지 않았다가 만나기 전에 떨리긴 했는데 나와 동년배(?)인 분이 작은 에세이집을 하나 고이 올려두고 인사를 하니 마음이 괜시리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살짝 늦었기 때문에 디저트를 구매했는데 그 잠시의 시간조차 어색한 기류가 흘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곧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 서로 다른 남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채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서로의 거리를 가까이 만들어 주는지 새삼 알게 됐다. 물론, 원래부터 친했던 사람인 것 마냥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운 면은 있어도 적어도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그간의 목마름이 해소되는 듯한 감각이었다.
평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오늘 서점에 가서 구매한 책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군인지 등. 그 사람의 고유한 취향과 욕구가 묻어나오는 답을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의 감성을 나누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전문가의 포스를 나름 내보면서 일하는 것도 그것만의 매력이 있지만 역시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감성을 나누는 것이 더욱 즐겁다. 해야만 하는 일을 통해서 생활력을 단단하게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의 범주를 하루 중 조금이라도 채워 넣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가 지켜내고 싶은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다.
사람은 통제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목적을 위해 스스로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재미를 느낀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회사생활이 할만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하나의 수단이자 과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인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고 자유로운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있지만 오늘도 그 귀한 가치를 놓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주어진 역할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 걸 안다. 어른이라는건 내가 하고싶은대로 멋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이고 있지 않나, 10에 9을 잘할지라도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다. 10에 1을 못하면 그것이 부각될 뿐이다. 하지만 내 자신만큼은 잘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부분에서만큼은 인정하고 알아주고 싶다.
주어진 역할을 가만히 순응할 때는 모난 구석이 없기에 그 자체로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자 할 때는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붙잡곤 한다. 하지만 타는 목마름이 나를 도전하게 만든다. 순응적인 삶의 태도가 옳다는 가치관 속에 살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려니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글을 쓸 때도 내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이미 잘하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확인을 하려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는 것이다. 이미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가면서. 원래 잘하고 있는 사람은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칭찬보다 부족한 부분이 아쉬워, 더 아쉬운 소리를 자주 듣게 될 뿐이다. 잘하고 있다. 글 쓰는 것도. 이렇게 도전하는 것도. 모든 면에서 항상 나아지는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