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는 것

by 하늘자까

왠지 그런 날이 있다. 작은 것에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날이. 괜스레 피곤하고 무언가 많은 일을 한 하루가 더욱 그렇다. 어제의 다짐은 오늘 오전 8시에 일어나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오전 7시 반에 일어났다. 원래 다짐한 첫날이 가장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짐의 효력이 발휘되는데, 이것이 휘발되지 않게 잡아주는 것은 이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앞으로도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출근을 했다. 오늘은 웬 바람인지 친구가 선물해준 원피스를 입고 싶었다. 엄밀히 하면 선물이라기보다 사이즈를 잘못 계산해 사놓고 입지 못하는 새 옷을 나눔한 것인데, 디자인이 참 소녀스러워서 그동안 걸어두기만 했다. 왠지 길이도 짧은 것이 평소 긴치마를 즐겨 입는 나로서 쉽게 손이 가지 않던 아이였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그 하늘색 원피스가 입고 싶었다. 거울에 비춰보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대로 입고선 크로스백에, 노트북 가방을 차례로 메고 들었다. 무슨 전투를 준비하는 것 마냥 양팔이 무거워졌다. 운동화를 신었으면 좀 나았을지 모르는데 원피스를 입었다고 밑창이 얇은 하얀 샌들을 신었다. 옷만 보면 어디 스냅사진이라도 찍으러 가는 모양새였지만 양팔 무겁게 들고 있는 가방이 나의 행선지를 설명해주었다.


사무실로 가는 길, 협업하고 있는 타 기관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는데 어제 보낸 파일에서 수정할 것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새롭게 설계한 과정이 있는데 그중 3개 정도를 어제 완성해서 보내 놓은 참이었다. 기존에 미리 작성해 두었다가 보류된 과정과 주제가 같아 해당 원고에서 착안해 설계한 것들이었다. 과정 설계에 들어갈 때도 기존과 중복되는 내용이 몇 개 들어가도 괜찮은지를 분명히 컨펌받았었는데 명확히 안내받지 못한 사항에 대해 수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음, 도착해서 수정해야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사무실에 도착해 파일을 건드려 보니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수정과 동시에 해당 내용을 추려서 원고로 옮기려고 하니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이런저런 검색, 많은 정보들 속의 취사선택, 그리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작업까지.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정 작업을 마치고 신규 개발에 들어가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집중력이 그렇게 긴 편은 아니라서 중간중간 다른 작업을 하면서 환기를 시켜주는데 막판에 가서는 인내심이 필요해졌다. 사탕 하나 물고 초콜릿으로 당분 충전을 해가면서 끝까지 업무를 해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졌다. '피곤하다, 집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오늘 입고 온 원피스도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오늘의 일정은 사무실이 다가 아니었다. 이후 1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점심에 먹은 돈가스는 저녁까지 든든함을 채워주고 있어서 저녁 끼니는 건너뛰고 바로 서울로 넘어가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퇴근 즈음에 갑작스레 잡힌 일정이라 일단은 오케이하고 넘어가기로 했는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니 영 불편하기 그지없는 차림이었다.


‘어서 할 일 끝내고 오자!’는 마음으로 서울로 출발했고 23시가 다된 시각에야 나는 귀갓길에 오를 수 있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 옷이 신경 쓰이는 것도 이젠 귀찮아지고, 맨발로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촉감을 주는 신발을 신어서 그런지 발도 점차 피곤해짐을 느꼈다. 이번 주는 월요일까지는 쉬는 주말이라 충전기까지 야무지게 챙겨 온 노트북 가방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많은 일들을 해냈고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마음 한 켠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피어나는 하루였다.


집으로 도착하자 저녁 끼니를 걸렀던 것이 생각났다.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집에 먼저 도착해 있었던 동생이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 나를 보고선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 늦은 저녁을 준비해주었다. 늦은 시간이라며, 배부르게 먹으면 안 된다는 동생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으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 말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유튜브 채널 ‘오사사’를 보면서 맥주도 한 캔 까서 홀짝였다. 오늘 하루 참 열심히 살았는데 그 안에 나를 위한 시간이 있었는가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친 나를 알아주고 챙겨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귀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됐다. 하루 종일 누군가를 위한 일을 했구나 싶었고 뭐라도 쓰고 자야겠다 싶었다.


오히려 시간이 많았을 때는 글 쓰는 일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남을 위한 일을 많이 하게 될수록 내 일을 더 갈망하게 된다. 참, 쓰고 나면 그렇게 거창하다 싶은 글도 아닌데 라이킷을 눌러주는 분들이 신기하고 고맙다. 당장에 내가 원하는 삶이 펼쳐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요즘은 뜨는 유튜브 채널, 인기 있는 아이돌을 보면서도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있었을지를 더 먼저 보려고 한다.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야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있을 터이다. 나 자신의 가장 큰 팬이 되어, 항상 믿어주리.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하는 지금의 이 과정마저 사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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