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 TV 프로그램도 관찰 예능이 주를 잇는 시대다. 이토록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관심이 넘치는 때가 있었나. TV 속 연예인들, SNS 인플루언서들의 멋진 일상들, 혹은 일반인의 재치 있고 유머 넘치는 일상 방송들을 보면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원하는 바가 간접적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참 미디어를 헤매다가 잠자리에 들어 이불을 덮는 순간 허망함, 박탈감, 공허함이 밀려오곤 한다. ‘아까 프로그램 재밌었지. 그 사람은 역시 연예인이라 뭔가 다르구나! 근데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미치면 씁쓸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남들은 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다.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대입 후에는 취업을 위한 시간이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을 준비하고 이뤄내고 지금까지 왔는데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뭐 하고 있는 건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명확하게 꺼내기 쉽지 않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고등학교 3학년 혹은 대학생 때 많이들 한다고 하지만, 취업을 하고 나서도 이 길이 아닌가 싶을 때가 수두룩 빽빽이다. 지금까지 하란대로 잘 버텨왔는데 지금 이 상태가 과연 최선인가? 취업을 했으니 그럼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노후를 준비하고. 그다음은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것이 내 인생의 종착지인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갈망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고 싶다. 예능은 예능으로 끝내고, 현실의 나는 내 인생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 TV 속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을 이젠 나에게 돌려본다. 당연히 대학에 들어가야지, 취업해야지 하는 등의 사회적 요구로 인해 자아실현을 위한 고민은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이제 막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강력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불태우는 나 자신에게 던질 첫 번째 질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취업준비생 시절, 자기소개서의 추억이 스친다. 한 교육원에서 취재기자 과정을 밟고 있던 당시 강사님들에게 자기소개서 초고(?)를 내면 단락 전체를 드러내기 일쑤였다. ‘뽐낼만한 장점이 뭔가 있지..’하며 머리를 굴리면 부당함과 생채기 난 마음을 안고 참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름은 ‘자기소개서’이지만 회사를 위한 글쓰기였으니 적절하지 못한 내용이다. 장점은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취미를 먼저 작성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면 유튜브로 아이돌이랑 펭수 영상 보기, 직소퍼즐 맞추기, 고양이랑 놀기...
분명히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결과였지만 회사 기준 자기소개서로는 틀린 내용이었다. 어찌어찌 광나도록 글을 쓸고 닦아 자기소개서를 완성했고 그것은 내 손으로 작성한 것이 틀림없었지만 “이게 나라고?”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글쓰기였으니 나보단 회사 기준의 소개서가 맞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 미처 자기소개서가 포함하지 못했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대해 떠올려 본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애와 자기 연민이 있는 사람이며, 나와 관계된 타인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이는 면을 중요하게 생각해 오다가 존재함 자체에 대해 생각하려니 쉽지 않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서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입 밖으로 내뱉어 본다. 어차피 나는 나 하나뿐이 존재하는데 어떤 식으로 나를 정의한다 한들 거칠 것이 없다. 입술을 달짝여 내뱉은 문장 속에서는 예민, 자기애, 연민, 타인,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평소에 생각으로만 그쳤던 것들이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내뱉어져 자신의 정의가 되니 생경한 느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이러한 내가 앞으로 주어진 인생을, 그리고 당장 지금의 현실을 잘 살아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데, 내가 개척해야 할 길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작은 내 세상에서나마 자아실현을 이끌어 내고 행복을 갈망하는 이야기를 하나씩 정리해 보려고 한다.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이 불규칙하게 뒤섞인 내 인생을 꺼내 놓으면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있을까. 이정표를 따라 걷고 뛰었던 나날들 앞에 한 번 멈춰 서서 깊게 심호흡을 한다. 어떤 모양새가 나와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 작고 소중한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