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로 유튜브를 본다. 요즘 드라마 미생의 클립 영상을 주로 봐서 그런지, 연관 동영상으로 직장에 관련된 내용이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본다. 직장 내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영상이 올라왔길래 괜히 홀린 듯 클릭을 했다. 해당 내용에서는 상사를 잘 활용할 것(인풋을 얻어가라는 말), 자신이 이 회사에 적절한 역할로 자리 잡지 않았다면 리포지셔닝 하라는 말이 나왔다. 회사 내에서의 포지셔닝.. 즉, 자신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시절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고, 대표와 동료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했었다. 포지셔닝이고 역할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정도 '아주 살짝' 보인다 싶을 때가 되니 어른들의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해가 된다. 아 그리고 영상 속에서 나답지 못할 때, 그게 참 힘든 거라고 했다. 나답지 않은 문화에 함께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런 문화에 노출되는 게 정말 나에게는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회사를 다니면서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왕왕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나답지 못한 역할을 해야 되나? 싶을 때이다.
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난 술을 안 마신다. 아니 술을 끊었다. 요즘은 유튜브 채널 오사사의 마츠다 부장님 때문에 직장인의 퇴근 후 행복을 맛보고자 논알코올 캔맥주를 혼자 집에서 즐기기도 하지만, '취할 때까지 왕창 마셔'는 아니다. 그리고 난 MBTI에서 I유형이다. 물론, 나도 말하는 것 좋아한다. 단,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지혜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자기 경험에 의거한 그리고 나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자신이 표현하고 싶어서 말하는 조언을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재미없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회사 내 대표 및 동료들은 굉장한 애주가들이다. 대표도 I유형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진 않는다. 듣기보단 말하는 쪽에 더 가깝다. 직원들은 E유형이기도 하며 듣기보다 역시 말하기에 더 가깝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비친다. 내 포지션은 듣기에 가깝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맞장구를 쳐주고, 고객을 끄덕거리고, 시선을 그들에게도 향한다. 그리고 곧장 방전되기 일쑤다.
뭐가 그리고 할 말이 많은 것일까. 처음엔 내 기분이 얼굴 표정(재미없어라는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말들을 다 수용하려고 했었고, 진심으로 대하려 했었다. 아주 서툴었지만 웃어 보이려 노력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벙글벙글 웃는 얼굴은 좋다. 그렇지만 말이 쉽다. 사람은 모두가 다 다르고, 변화하는 시기도 속도도 다 다르다. 나는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어서 더욱 힘들었는지 모른다. 재미없는 말에 웃어주는 것, 지루한 말에 계속해서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 것, 관심도 없는 주제에 대응해줘야 하는 것. 술을 마시면 더욱 올라간 텐션에 목소리도 커지고, 별일 아닌 것에 자지러지게 웃고, 평소 맨 정신으로 하지 못했을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초반에는 정말 회식 때문에 그만둬야겠다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계속 다니고 있네.)
하지만 그 옷이 분명 내게는 맞지 않지만, 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것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배울 것도 있다. 그것을 다 버리고 나간다는 건 나에게 너무 아까운 일이다. 그래서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외향적인 인간이 되어 활발하고 재밌는 코미디언이 될 수는 없지만,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인정해 주고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기꺼이 그리해보자는 것이다. 세상에 혼자 가는 길은 없다. 같이 가는 길이고, 사람이란 사랑하고 포용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나를 이해해줘'라는 메시지만으로는 상호작용을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의 부족한 면들을 말하진 않아도 감싸고 있을 것이다. 음.. 쓰고 보니 감싼다는 표현보다는 서로 이해는 안 되지만, '저런가 부다. 특이하다.'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햇수로 3년 차라는 것을 계속 언급하고 있자니 뭔가 오래된 것 같아도, 아직 과정을 걷는 중이다. 처음 걷는 길이었고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야 조금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알 것 같다. 아직 어리고 배울 것이 참 많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