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에도 노력이 필요해

by 하늘자까

요즘은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본다. 정석으로 정주행 하는 것은 아니고,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 영상을 보고 다시 보고 싶은 영상을 몇 번 더 클릭한다. 미생이 나왔을 무렵이 내가 대학생 때였는데, 그때는 그저 재밌다, 볼 만하다의 느낌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고 싶진 않았다.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그 시절, 똑같아 보이는 회사원들의 삶이 재미없어 보였다. 매일 책상에만 앉아서 일하는 것이 나와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조금은 자유로운) 회사원의 모습이다. 책상에 좋아하는 책들과 아이돌 멤버 사진, 입이 궁금할 때 먹으려고 구비한 간식들은 그나마 이 공간에서의 내 취향을 반영하겠다는 표현이다. 작게나마 자기 자리에서 나를 열심히 표현해주고 있다. 주말에도 점심 먹은 후에는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서 무언가 사 나오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감사합니다으아하품"하는 내 모습에 '피곤한 직장인 바이브'나온다며 웃던 지인의 모습까지. 내가 그 직장인이 되어보니 미생의 에피소드들과 캐릭터의 존버 또는 성장 스토리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출퇴근길에도 미생을 보고, 오늘은 집에 와 저녁을 먹은 후에도 한 30분가량 시청했는데 눈이 피로한 시점이 왔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겠다. 나가서 공원이라도 걸어야겠다 싶었다. 여름밤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개 산책하는 사람들, 아이들 데리고 나온 부부, 커플, 친구, 할아버지, 할머니. 제각기의 방법으로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봤다. 유튜브를 계속 보다가 약간의 현타를 맞이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적당한 활동을 해야 소비자의 모드가 아닌 생산자의 모드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달이 떴다고 해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꽤나 더웠다. 머릿속으론 생산자 모드가 발동해 '오늘은 무엇을 쓸까?'고민했다. 새벽까지 깨어있다가 잠드는 바람에 사무실에서 중간중간 졸았던 기억이 나는데, 문득 떠오른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오늘은 대표와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12시 언저리쯤 대표는 점심으로 콩국수를 제안했다. 콩국수를 포함한 다양한 메뉴를 파는 식당이 근처에 있어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보통 직원들끼리만 있으면 월요일 같은 날, "주말에 뭐했어요~?" 하면서 스몰토크를 시작한다. 그러면 이야기 들으면서 리액션을 주로 해주는 역할인데 대표와 같이 있으면 참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싶은 것이다. 세대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 스몰토크로 무엇을 선택해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는 사실 비단 대표가 아닌 직원들끼리만 있어도 고민이 된다. 뉴페이스로 들어온 한 직원과 마주 보며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 머릿속에는 'MBTI 뭐냐고 물어볼까?', '뭐 좋아하냐고 물어볼까?', '국수를 왜 이렇게 빨리 먹냐고 물어볼까?' 별별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오는 대답, 그리고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술술 잘 이루어지는데,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퍽 쉽지 않다. 이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사실 내가 못 견디겠어서 말을 걸고 싶은 것인데 딱히 뭐라도 해야 할지도 생각이 안 난다. 월요일엔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는 것이 국룰인데 아까 대표가 먼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그 조용하고도 어색한 시간에 꺼낸 질문이었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의 답변은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술 마시느라 토요일에는 계속 쉬었다는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다른 애주가들이 그에 대한 질문을 추가했고, 그렇게 몇 번의 핑퐁이 오고 갔다. 그들의 대화를 리액션을 추가하면서 듣다가, 머리를 더 굴려볼까 싶다가... 그 자체가 피곤해져 버렸다.


드라마 미생 속 안영이도 자원 2팀의 팀장이 자신의 업무를 칭찬하자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라며 능청스럽게 맞대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덧붙여 "위트 사전 보며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최근에 직장 내 잡담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어서 그런지, 더욱 상대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내제화 시키는 것은 다르다. 책을 읽는 그 자체로 알게 됐으니 이제 됐다, 가 아니라 적용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을 하기 위해서도 내가 아는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실생활에 관련된 정보들에 문외환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그저 흘러가는 시간처럼 보이는 잡담일지라도, 그 또한 능력이 될 수 있고 연습이 필요하겠구나 싶은 경험이었다. 술과 더불어 담배도 피우지 않아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그 타임에도 나는 멀찍이 있거나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는 편이다. 그렇다고 동참을 할 생각은 없지만 점심시간, 퇴근시간 등 그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는 시간만큼은 웃는 얼굴과 적극적인 대화 참여의 노력을 보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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