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인천 지역에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바람은 찼고 올겨울 들어 쌓인 눈은 처음보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눈이 내리면 “와! 눈 온다!!”하면서 신기함과 기쁨을 온 마음 다해 표현했었다. 지금은 “오, 눈 온다. 좀 쌓였네?” 정도로 표현되지만 그래도 눈이 오면 좋긴 좋다.
요 몇 주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쉽게 쓸 수는 없었다. 글을 쓰는 것도 어찌됐던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라, 내 마음이 뒤죽박죽이면 어떤 글을 써야할지 감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잡히지 않았던 것은 생활이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7월말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구하려고 노력했다. 어느정도 모아둔 돈이 있어서 당장 생활비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는 내 모습이 퍽 불안했다. 주변에서는 각자의 전공과 재능으로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지금이 12월 중순이니 약 5개월 간 나는 이도저도 아닌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고민을 하기보다 무엇이라도 하면서 고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 급하게 일을 구하기도 했다. 구인구직 어플에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참 에너지가 빨리고 지치게 되는데 연락이 와 면접을 봐도 내 마음에서는 다시금 회사에 대한 거부감이 올라왔다. 면접을 잘 봐도, 그리고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아도 나는 기쁘지 않았다. 최근 한 컨설팅 회사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해 출근을 하기도 했다.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마음 상태로 나를 구겨넣은 공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를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무엇보다 첫 주 회식자리에서 오갔던 문란한 대화들, 문란한 문화들이 내 마음을 차게 식어가게 했다.
‘어차피 회사는 일하는 곳이니, 나에게 피해만 안 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그 생각이 마음으로 내려오는 건 쉽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이 어린아이 같고, 많은 직장인들은 이런 상황들을 참고 견디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지금의 나는 그런 상황과 타협할 수가 없어서 다시금 퇴사 사유를 밝혔다. 죄송한 마음이 인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쿨한 반응에 어쩌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참으로 어렵구나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면 괜히 지인들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자존감을 지키고 싶어서,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회사는 다니지 않는게 좋다, 회사는 아주 많으니 맞는 회사를 다시 찾아보면 된다.” 등의 공감 어린 말들을 해준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잠시의 이너피스를 느낄 수 있는데 결국은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잘 될 수 밖에 없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이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문득 준비 없이 퇴사를 했던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후회의 감정이 올라오려고도 하지만 그 순간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그것이 당시의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래도 전직장 대표와의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어서 종종 일감이 생길 때면 나를 찾아준다. 소속된 것은 아니지만 잠시의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을 맡기곤 하는데 쌀쌀한 겨울에 잠시라도 몸을 녹일 수 있는 붕어빵 같다. 덕분에 이 시간을 좀더 버틸 힘이 나고 좋은 때를 만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한다.
타인을 생각했던 마음들이 누군가에게는 바보같아 보일지라도 이 마음이 닿는 누군가는 있구나, 싶다. 그동안 행했던 것들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음을, 바보 같은 마음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올 것임을 분명 믿는다. 오늘도 나답게 살기 위한 마음을 지키면서 더 강해지는 시간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