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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자까 Feb 03. 2023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는 눈 – 산책2

사는 빌라를 근처에는 작은 산을 다듬어 만든 공원이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조금은 낡은 문을 밀고 나오면 오른편으로 가파른 언덕이 보이는데 그곳이 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퇴사 후 머리가 복잡하고 마냥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해질 때면 대충 외투를 걸쳐입고서는 공원으로 향했다. 매일 걷던 길을 걷다가, 커피를 사고 들어오는 것이 산책의 보통 루틴이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불안함 마음에 사람인, 잡코리아, 알바몬을 수시로 들어갔다. 직업란, 지역란을 수시로 바꾸면서 갈 만한 곳이 없을까 하면서 눈을 핸드폰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렇게 새벽을 꼬박 지내기도 했다. 회사에서 답답함을 느꼈고 하루종일 모니터만 보는 삶에서 나는 소모적인 기분을 느꼈는데,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어딘가로 소속되고자 하는 내 모습이 익숙치는 않았다. 


글을 써도 내가 왜 회사를 나왔는지 상기시키는 글을 써내려갈 뿐이었다. 세상에 그저 내던져진 기분이랄까. 그런 상황 속에서 걱정 어린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실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안함만 안겨줄 뿐이었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최선의 선택이었고, 너는 분명 잘해낼거야.’라는 말이었다. 


어플을 보던 눈이 뻐근해질 때면, 이내 회사에서와의 또 다른 현타를 느꼈다. 이럴 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곧장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예쁘게 심어져 길을 안내하고 있고, 운동하는 어르신, 가족, 종종 야외수업을 나온 유아들을 본다. 복잡하던 생각들을 그런 풍경 앞에서는 잠시 멈추고 ‘사람이 저렇게 작다니,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새삼 나무 진짜 크네.’, ‘외국 여행 가고 싶다.’ 등의 생각만이 퐁퐁 올라온다. 운이 좋게도 하늘이 그야말로 ‘하늘색’이고 하얀 구름이 조각으로 떠있고 날씨도 맑아서 미세먼지 없이 온 동네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개안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 공원에 거주하는 고양이들도 몇 있다. 그중 우리집 고양이 ‘깜몽이’와 같은 종도 있어서 내심 기대하고 그 고양이를 찾기도 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오늘은 깜몽이 고양이 왔나?’ 식으로 그들의 거주지를 지나친다. 없으면 가던 길을 쭉 가고 있으면 몇 초 아이컨택을 한다. 날씨가 궂은 날에도 잘 견뎌주면서 날 좋은날 몸뚱이를 뒹굴이면서 일광욕을 즐기는 고양이들을 보면, 오랫동안 그 고양이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고양이들을 뒤로하고선 산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루트를 계속 걷는다.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오르막길을 내리 걷다보면 숨이 가빠지고 종아리도 땡겨온다. 유튜브에서 bts의 콘텐츠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멤버 슈가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일부러 스케쥴을 ‘빡세게’ 잡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춤 연습을 넣기도 한다는데,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방법의 하나가 된다고 본다. 그저 걷고 있는 이 순간만에 집중할 뿐이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큰 원 코스가 있는데 그곳을 또 몇 바퀴 걷는다. 맑은 날 보는 것도 좋지만 오후 5,6시쯤에는 주황빛 노을을 볼 수 있고 저녁이나 밤시간대에는 어둔 하늘에 빛나는 불빛들을 볼 수 있다. 괜히 그 풍경을 바라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가만히 서서 풍경을 한참이고 바라본다. 언제부터 이리 걱정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진건지 싶으면서, 그냥 “아, 풍경 좋다!”고 외치고 그냥 감상하고만 싶어진다. 


머리 위로 손을 저으며 생각 그만하자고 하고선,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해준다. “잘 할 수 있어, 조급해하지말자.”라며 스스로가 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을 그리면서 말이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걷는다기보다는 그저 걷고싶어서 걷고, 산책 후 마실 아이스 커피가 기대되는 그 기분이 좋아서 걷는다. 산책은 나에게 일상에 소소하게 존재하는 확실한 행복들을 붙잡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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