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하고 있나요?

by 하늘자까

인생은 자신의 운명을 찾아나가는 여정 같다. 누구는 숫자를 좋아하고, 누구는 활동을 좋아하고, 누구는 관찰하는 것을, 창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을...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게 다르다.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 바로 그 포인트를 찾아나가는 여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국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똑같지 않을까? 행복을 위해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새로운 경험은 나를 알아가는 것에 도움을 준다. 내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탐구하게 만든다. 같은 환경일지라도 누군가는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흥미를 느끼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과정을 (아직도!) 걷고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발견한 점은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흡족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나는 이 순간 내가 존재한다는 기분을 느낄 때 흡족하다. 이질감 없이 나를 둘러싼 환경과 하나가 됐을 때 존재함을 느낀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전제조건은 누구도 다치지 않고,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고, 어느 정도 고독함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주로 자연 속에 있을 때 실현된다. 초록색이 가득한 공원 속 벤치에 앉아 있다거나,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거나, 오후 5~6시쯤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거나, 고요한 강을 응시할 때. 적당한 고독함과 편안함이 밀려든다. 가끔 (요즘엔 더 자주) ‘월든’의 삶을 꿈꿔보기도 한다. 자연은 정말 신기해서 그 자체가 위로가 된다. 도시의 편리한 삶 다 놔버리고 조용한 시골 어느 한 구석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쉽게도 내가 사는 곳은 자본주의 사회라..


속세를 떠나 작은 텃밭 가꾸고 책 읽으며 여유 부리는 그런 삶. 생각만 해도 낭만적인 삶이지만 돈의 유무에 따라 내 선택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꿈은 누구나 자유롭게 꿀 수 있지만, 현실로 만들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원하는 대로 살기엔 일정 부분 할애해야 할 것이 있다.


그전에는 원하지 않는 일임에도 단순히 (단순한 것이 아니지만, 과거 순수한 나에게 돈은 그저 단순한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익숙하고 마음이 가는 길에만 손을 대며 살았다. 물론 돈은 필요했지만 깊게 연관되고 싶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내가 존재함을 느끼는데 주로 시간을 보냈다.


이십 대 초중반은 내 행복을 찾아다니는데 썼다. 깊게 무언가 파지는 않고, 맛보기용 재미만 추구하는 식이었다. 단기적이어도 그 순간 빠져들기만 한다면, 내겐 그 하루가 유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발을 들여놓은 연수원은 현실의 눈을 띄우기 위한 펀치와 같았다. 언제까지고 이십 대 초중반에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는 나에게 현실 그 자체였다. 진짜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선 삶의 한 부분도 낯선 것에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존재함을 느끼기 위해 살아온 지난 몇 년은 나에게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편안한지 알게 해 줬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생의 방향을 잡는 시기가 다르듯, 나에겐 조금 천천히 그 시기가 다가왔을 뿐이다. 내 성격 닮아 그 시기도 기다렸다가 딱 알맞은 시기에 내게 왔나 보다.


원하는 삶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나는 조금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지만, 무의미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에 나를 둘러싼 이 모든 환경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나조차도 몰라서 그저 하루하루 존재함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간다. 자신이 찾아낸 행복에 더 가까이 가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아파하는 시간조차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소중하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오늘도 쓰고, 걷고, 보고, 읽고, 먹고, 마시고. 유의미한 하루다.

작가의 이전글두려운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