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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J Oct 16. 2024

세 번째 퇴사를 했다.

잘했든 못했든, 수고했다.


5개월간 일하던 전략 컨설팅 펌에서 이틀 전에 퇴사했다. 상사에게 직접 퇴사 의사를 전하기 전날에는 잠을 설쳤다. 30분마다 잠에서 깨어나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나는 만 28세, 한국 나이로는 30이다. 2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1년 3개월 동안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그러던 중 국내 중소 전략 컨설팅 펌에 인턴으로 입사해 지난 5개월을 일했다.

비록 중소기업이었지만 전략 컨설팅 펌이라 그런지 다른 인턴들은 모두 명문대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평균 5~6살 어린 그들은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듯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 직원은 나이가 많고 오피스 툴을 잘 다루지 못하는 나를 대놓고 괄시했다. 나는 그의 오른쪽 자리에 앉아 상사에게 매일 혼나면서도 버텼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해 한국 대학생들이 하는 학회, 자격증 공부, 오피스 툴 등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중소기업의 글로벌 신사업본부에서 마케팅을 담당했기 때문에, 사업기획·전략기획으로 직무를 바꾸고자 한 후 요구되는 재무 관련 지식, 시장 조사, 경쟁사 분석 등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것들을 배우고자 이곳에 들어왔지만, 현실은 내게 가혹했다.


욕을 먹어가며 하나하나 배운 시장 조사, 경쟁사 분석, 비즈니스 모델 수립, 재무 계획 수립 등 컨설팅 펌에서의 경험은 모두 내 자산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대기업에 가기 위해 필요한 자질들도 나도 모르게 많이 쌓였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지도 인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상사는 내게 일주일을 더 근무해달라고 했지만, 맡은 업무는 일주일 안에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00쪽에 달하는 컨설팅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기존 자료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나머지는 새로 시장 조사와 경쟁사 분석을 해서 넣어야 하는 내용이었는데, 도저히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해도 끝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월급은 지급 예정일에서 10일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입사한 달부터 매달 그랬다. 기다리다 1주일이든 3주일이든 후에 들어오면 그제야 "그래도 들어왔구나"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턴 3개월 계약으로 시작해 3개월을 추가 연장해 근무하고 있던 터라 계약 종료까지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내가 담당했던 정부 컨설팅 사업 프로젝트의 1,500쪽에 달하는 최종 보고서를 밤 11시까지 야근하며 마친 후 더 이상 이 일을 지속해야 할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음 날에는 목이 돌아가지 않아 휴가를 내고 주말 내내 쉬었다. 몸과 마음이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상사는 내게 왜 지금 와서 퇴사를 말하느냐며 노발대발했지만, 꾹 참다가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자 흠칫 놀라더니 퇴사하라고 했다. 오후에 할 일이 없으니 오후는 휴가를 쓰고 퇴사 서류를 작성하고 가라고 했다. 마치 나에게 더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듯이. 뭐, 한 푼이라도 일단 줘야 성립되는 말이지만.


한시라도 빨리 나오고 싶어 인수인계 파일을 상사에게 보냈다는 말을 하려는데, 잠깐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상사는 내게 "어디 갈 곳은 있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11월에 자격증 시험 공부를 우선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가 업무 지시도 잘 이해 못해서 헤매고, 파워포인트도 잘 못해서 근무하는 동안 어렵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버리러 화장실에 들어가니 눈물이 쏟아졌다. 키보드와 중형 책상 선풍기가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아 양손에 들고 회사를 걸어 나오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3개월 인턴 계약직으로서 지금껏 받은 무시와 괄시, 서러움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5개월 동안 버티며 일한 내가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너무 수고한 것 같았다. 잘했든 못했든 그 시간을 꾸역꾸역 버텨온 내가 안쓰러워서 울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퇴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지난 5개월 동안 나는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를 돌며 한 걸음 한 걸음 꾹꾹 눌러 걸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시간을 버틴 내가 가엾고 안쓰러웠다. 그냥 너무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앞에 나는 얼마나 와 있는지,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걸어온 길이 얼마나 잘 걸어왔는지, 맞는 길이었는지,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다만 얼마나 잘했느냐와 상관없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과 상관없이 참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구나. 그래도 참 지금까지 잘했다.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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