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를 읽다가 만난 문장

자식은 원래 부모를 가장 좋아합니다

by 김꾸미


자식은 원래 부모를 가장 좋아합니다.

자식은 원래 엄마를 제일 좋아합니다.





오은영의 화해를 읽는 중에 위의 문장을 만났다.


자식은. 원래. 부모를. 가장. 좋아합니다.

자식은. 원래. 엄마를. 제일. 좋아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서는 멈추었다.


그리고 귀퉁이에 PILOT 샤프를 집어 들어 썼다.


나는 언제까지였을까? 그런 적이 있긴 했을까?












나는 지금 부모가 되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올해 5살이 되었다.


곧 몇 밤만 더 자면 언니오빠들만 타고 다닐 수 있는 노란 버스를 자기도 매일 아침마다 기다리고 닫힌 유리창문 너머 엄마의 얼굴을 향해 손을 힘차게 흔들 수 있을 거라는 크고 환한 기대를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침 8시가 될 때까지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내 눈에는 아직 어린 아기 같은 아이.


나의 아이를 보니 수긍이 된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좋아하고

어쩌면 아빠보다 엄마를 조금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이가 하는 놀이에는 자석블록으로 13층 아파트 만들기, 스티커 냉장고 붙이기, 야광 별 붙이기, 침대 소파 위 물구나무서기, 이길 때까지 하는 가위바위보 같은 것들이 있는데 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는 건 숨바꼭질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계속 누군가 숨어야만 하는 그 놀이는 결국 아이에게 앞으로 남은 숨기의 횟수를 다짐시킬 수밖에 없으며 마침내 약속한 시간이 다 되더라도 아이는 늘 언제나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진짜 마지막~"을 앵무새처럼 말하곤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매일의 잠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지금 잠들지 않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아이가 발견한 놀이는 바로 즉흥 노래 만들어 부르기. 엊그제 처음 선보였는데 연이어 부르는 노래들을 침대에 누워있는 나, 아직 거실에서 불을 환하게 켜고 식탁 앞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한 번씩 들려주어야 하므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잠드는 시간을 10분 정도는 뒤로 충분히 늦추고도 남았다.


그 두 번째 노래.


"나는 나는~ 엄마 아빠~ 사랑해~~ 엄마랑 아빠를~ 엄청~ 마니 마니~ 사랑해~~~"






나도 그랬을까?

나도 5살 아니 6살 그 어느 때라도

엄마 아빠 사랑해라고 노래를 불렀을까?


어느덧 어떤 경우에는 40대 성인 남성인 나의 배우자 보다 능숙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아이는 이제 제법 묵직한 물건들도 고사리보다 조금 더 자란 손으로 번쩍번쩍 드는데 어느 날에는 책장 가장 밑에 꽂혀 있는 꽤 두껍고 오래된 앨범을 꺼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장면들을 아이와 함께 보았다.

엄마인 나는 한동안 잊힌 시간들이었고 아이는 처음 보는 엄마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삼성 갤럭시 노트 휴대폰으로 지금껏 아이를 찍고 또 찍는다.

어린 나를 보며 나의 엄마는 후지 필름 카메라로 저 두꺼운 앨범이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찍었다.


어떤 사물을 향해 렌즈를 대고 셔터를 누른다는 건 그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것이 물체든 풍경이든 사람이든. 나의 엄마는 어린 나를 사랑했다.

그런 그녀의 온기 있는 마음을 먹고 나는 자랐다.


그와 그녀와 어린아이.

이렇게 셋이 보였다.


사진 속 그 아이는 해맑다.

웃는다.

분명 그 아이는 행복하다.


탄력 있는 굵은 펌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

짙은 갈색 선글라스가 눈 위를 크게 덮었지만

두 눈동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날렵한 턱과 매서운 코의 그.

현재와 앞으로에 대해

막연하지만 굳은 의지가 서려 있다.


여름 모래사장의 해변,

그의 회사의 연말모임자리,

넓은 잔디밭을 가진 공원,


공간마다 그와 그녀와 어린아이.

셋은 함께 한다.


나는 분명 그와 그녀를

나의 아빠 그리고 엄마를

어린 자식은

좋아했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아마 예상하건대

많은 것들을 모르고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지 않고

간편하지만 얕게

(이반일리치의 삶을 두고 말하듯) 가뿐하고 유쾌하고 점잖게 흘러가도록

삶을 그저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난 시간들을 이제 와서 어찌할 재간은 없으며

애석하게도 우리 가족이 보낸 시간들에 대하여 '혹시나 다른 모양으로 흘러갔으면 어떠하였을까'

하고 잠시 애써 상상해보려 했지만 그조차 어색한 느낌이 들어 그만두기로 하였다.

이미 모든 것들이 지나갔다.

마치 그 잔인한 세월들이 정녕 실제 하긴 했었는지 가뭇없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나의 아이가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자신의 사진을 보려 할 때

셋이 함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단지 열셋의 나이 - 예를 들면 중학교 교복 사진을 입고 엉거주춤 어색하게 찍은 중학교 입학식날 같은 - 에서 끊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다섯 살을 지나 열다섯 스물다섯 서른다섯 그 어떤 나이에 이르러도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다고 해주길.

음률 없는 말이나 편지 속 글이어도 좋으니.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명예나 학력이 아니에요.

결국 따뜻한 기억, 행복했던 추억뿐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것도 결국 그것입니다.

-오은영의 화해 P.24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