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과 비스킷
만년에 왜 어머니가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 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이방인 2부 5장
그 시절 왜 나의 엄마가 꽁꽁 차디차게 얼어붙은 겨울 같았었는지,
왜 때가 되자 거의 모든 것을 15층 그곳에서 모두 꺼내와 밖의 쓰레기장에 한가득 쌓아놓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온정이란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의 저녁은 애달픈 정적 같았을 것이다.
-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시험날이었다.
아마 대학을 다니던 시절로 느껴졌다. 모든 것이 일치하진 않았다.
나는 나의 학년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고 다른 교실에서 그 시간을 보냈고
뒤늦게 쉬는 시간 동안 내가 있어야 할 교실로 허겁지겁 찾아가니 그곳에는 이미 정원이 꽉 차 있어
나는 내 자리에서 시험을 치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어쩌냐 하였더니 나는 휴학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꿈이었다.
벌써 며칠째던가.
오늘도 4시 30분 즈음 눈이 떠졌으나 나는 몸을 일으키려는 데 힘을 쓰는 대신 휴대폰 속 알람의 숫자를 바꾸고 있다. 4에서 5로. 그렇게 조금이라도 침대와 붙어 있기를 택하였으나 곧바로 빠져든 잠에서 나는 몸을 뒤척인다. 달콤한 꿈을 꾸지도 못할 바에 이제 정말 일어나는 게 낫다.
'굿모닝입니다'
어제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아침기상 톡을 보냈다. (또다시 게을러진 나를 반성하는 투로 몇몇에게 약속의 말을 했다)
벌써 여러 날들 악몽이 나와 함께 한다.
대부분 꿈의 내용들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무언가에 쫓기거나 두려운 마음이거나 괴롭거나 공포스러운 느낌 같은 것들이었으며
바로 얼마 전엔 아직도 생생한데 아이의 얼굴이 한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함께 놀이를 하던 아이의 발이 허공을 밟았고 동시에...
어제 잠시 이곳에 고백(?)했는데 지금 나의 시간들은 녹록지 않다.
그것을 두고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고 어제 말했다.
그렇게 허공에 떠 있는 것에 이렇게나 에너지가 들고 있다.
아 오늘은 나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러니까 1월 23일 이방인을 읽고 2편을 쓰고서 3편을 쓰기까지 10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긴 연휴 덕분에 더 더 미뤘다. 연휴라는 게 없었어도 10일쯤 지나서 겨우 쓸 수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오늘 꿈에서도 아주 잠시 엄마에 대해 떠올렸다.
얼토당토 아니한 일로 인해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강제휴학까지 당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엄마에게는 무어라 말하지?라는 걱정 같은 것을 얼핏 했다.
(실제 현실에서도 나는 휴학을 했었다. 다만 자의휴학이었으며 할 수 있는 만큼 연거푸 휴학을 해대고는 내가 호기롭게 선택한 것은 자퇴였다. 대학은 아니었고 대학원이었는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한 것이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게 10년쯤 시간이 지나고서 나는 그곳에 제 발로 다시 들어가고야 말았으며 그때부터 지옥이 펼쳐졌다)
"우리 엄마는 무섭습니다"
무언가를 잘 버리지 않는 편에 가까운 엄마 덕분에 우리 집엔 내가 초등학교 때 만든 가족신문이 하나 굴러다녔는데 거기 가족 소개에 12살 정도 된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비교적 짧고 간명하게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 저때는 나의 10대를 통틀어 보면 오히려 가장 좋았던 시기에 가깝다. 좀 더 시간이 흘러 다시 저 문장을 채워야 했다면 "우리 엄마는 잔인합니다" 정도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 버릇이란 고치기가 어렵다.
오늘은 엄마에 대하여 뿐만이 아니고 내가 아닌 엄마의 시선에서 생각하려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나에게서 출발해 버린다. 나의 시선에서 보는 엄마를 한 번 더 덧붙여도 된다면 한 두 개 정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삼계탕과 비스킷.
내가 홀로 자취하던 서울 한 동네 골목 식당에서 연기가 폴폴 나던 허연 삼계탕을 죽죽 찢어 다리 살점들을 나의 앞접시에 툭툭 두던 엄마의 두 맨손과 15층 집 앞 KFC 비스킷 6개 한 팩을 향한 총총히 그리고 빠른 모양을 보여주던 두 다리. (아마 뭐 50% 세일! 이런 광고 문구가 보였던 듯하다)
꽤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서까지도 나는 이 장면들을 꺼내고 싶을 때 요령 있게 끄집어낼 수 있다. 나에게만큼은 꽤 훌륭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나 그때를 회상하며 떠오르는 감정 중 한 가지는 '다행이야'라는 작은 안도 같은 것이다.
만년에 왜 어머니가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방인 2부 5장
그 시절 왜 나의 엄마가 꽁꽁 차디차게 얼어붙은 겨울 같았었는지,
왜 때가 되자 거의 모든 것을 15층 그곳에서 모두 꺼내와 밖의 쓰레기장에 한가득 쌓아놓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온정이란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의 저녁은 애달픈 정적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지옥 가까이서 엄마는 언제든 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 어느 때에는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이어갔을 것임이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엄마의 시간들에 대하여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는 나의 예상보다 좀 더 부족하다.
자꾸만 나의 시선에서 보려 하기 때문이다.
치유되지 않은 것들이 한 데 모여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이 스르르 사라져 버리길 원하는가?
모호하다.
화해하길 원하는가?
나의 엄마 이전에, 어린 날의 나와, 화해하기를 나는 원하는가?
뫼르소 그가 그의 엄마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길 그게 오늘인지 또는 어제인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고 하여 뫼르소 그가 정작 그의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과 같이 나 나는 그 시절의 나와 화해하는 것이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인지 그래서 그로부터 나의 엄마와까지도 모종의 화해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진짜 이제와 서도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인지 모호하다고 말했다고 하여 내가 정작 나의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하는 것으로 지금은 잠시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
"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 -이방인 1부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