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지를 잊어버린 채
무언가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니까 어떤 잡념 같은 것 말이다.
며칠간 나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그곳으로 몸을 옮기며 시간을 보냈다.
눈이 펑펑 내리다가도 가뭇없이 사라져 어느새 햇빛이 내리쬐기도 하였다.
그런 시간들이 끝나자 나는 다시 제 자리에 와 있다.
지금 잠시 혼자가 되어 무언가를 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왔다.
사실은 브런치에서의 일정대로라면 나는 지금 쓰는 잡념 같은 글이 아니라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3편'을 이어서 쓰고 있어야만 했고 드디어 나의 엄마 이야기를 꺼낼 차례였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조금씩 미루고 있었고 결국 나는 지금 이것을 쓴다.
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 그에 따라 저는 제가 정했던 목표, 현재 저의 처지를 잊어버린 채 추구하고자 노력하려던 목표를 그대로 간직하든가 포기하든가 할 생각입니다. -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p 164
방금 전까지 나는 챗 GPT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가운데 그가 무언가 작성하는 동안 (한 10초쯤 되려나?) 틈틈이 노트북 왼편에 놓인 책의 문장들에 눈을 두었다. 그러다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가 주고받았다는 편지들을 엿보게 되었는데 카뮈가 그의 스승 그르니에에게 보낸 편지... (아. 아이가 돌아왔다. 잠시 저장)
다음날 오후 14시 56분.
그러니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조금 끄적인 글 아래에 다시 무언가를 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요 며칠 명절 연휴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오늘의 날짜가 벌써 2월 3일이다. 해가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더 지났다(!)
나는 그동안 이런 핑계 저런 핑계와 함께 어디 한 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방금 전 스스로가 이미 핑계라고 표현했듯이 그건 글자 그대로 핑계에 불과함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긴 연휴가 어쩌면 또 하나의 그럴듯한 명분이 되어주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끝이 났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4시 30분 휴대폰이 그의 몸을 떨었을 때 나는 예전처럼 나의 몸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두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얼마 후 오른 편의 아이가 몸을 뒤척여 나에게 안기는 모양이었고 나는 때마침 아주 적절하고 포근하기도 한 지금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재빠르게 찾으며 두 팔을 뻗어 아이를 안고 눈을 다시 꼭 감았다)
그리고 어제 아주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그 문장을 본 것이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 속에서 얼마 전에 또 한 번 읽게 되었던 이방인을 쓴 카뮈와 그의 스승이라는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편지들의 문장들 중 한 구절. "제가 정했던 목표, 현재 저의 처지를 잊어버린 채 추구하고자 노력하려던 목표"
현재 나의 처지를 잊어버린 채 추구하고자 노력하려던 나의 목표. 내가 정했던 나의 목표.
잠시 잊고 있었던 내가 추구해야 하는 내가 추구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현재 잠시 나의 처지를 잊어버린 채 내가 지속해야만 하는 나의 목표 내가 정했던 나의 목표.
그것에 대하여 열아홉의 카뮈가 1932년에 그의 나이보다 갑절은 더 많은 마흔이 넘은 나에게 커다란 시간을 거쳐와 2025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어느 날에 문득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지려고 들기 전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요." - 그로부터 딱 한 장을 넘기면 만날 수 있는 스물의 카뮈다
그런데 사실 당시 이 편지의 수신인인 카뮈의 스승 그르니에의 나이는 서른셋 정도였다는데 마흔이 넘은 내가 여전히 어디선가 내 삶을 구원할 나의 스승을 만나기를 바라는 것이 어쩐지 무언가 맞지 않아 보인다. 뭐 스승은 아니더라도 이들 같은 관계는 여전히 부럽다.
여중생 시절의 교환일기 같은 거의 매일의 충실함은 아니더라도 삶을 살다 어느 날 어느 때에 한두 시간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드물지만 지금처럼.
to. u
...
저는 지금 저의 처지를 잊은채
매일 할 수 있고
하려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저의 처지를 잊은 채.
저의 처지를 잊어버린 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부디
당신도 평안하세요.
fr. me
ps. 삶이란 것은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어느 겨울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