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키우고 싶다.
브런치의 첫 글에서 워싱턴 스퀘어 한 가운데에서 오카리나를 불면 어떻겠구나- 하고 상상만 했었다면, 실제로 실행에 옮긴 일도 있다.
그냥 있을 줄 아는가.
세상에 그렇게 멍청한 일을 많이 할 수가 없다.
어우 이 정도면 그냥 떨어져 죽지 싶어서 뉴욕에서 주변에 보이는 빌딩 중 가장 높은 곳 입구로 들어갔다가 오피스텔 일 층에서 경비원한테 쫓겨난 적도 있고, 혼자 런던행 비행기에서 간만에 마신 와인 몇 잔에 취해 계속 시켜 먹다 착륙할 때쯤 비행기 땅바닥에서 예쁜 백인 스튜어디스랑 마주했던 일도 있었다. 일어났는데 어딘지 모른 호텔 침대였던 건 또 어떻고. 오늘은 이런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 신호탄 격인 사건에 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하여튼, 제발 엄마 아빠가 이 글은 안 읽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모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말이 되진 않아도 실제가 될 수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다.
18살이었나 19살이었나 한국이었으면 고 2, 이상한 학교에 다녔던 나는 12학년이었다. 그러니까, 대학 입시가 끝날 때까지 D-(1년) 정도였다는 건데, 다들 인생에서 한 번쯤 미쳐봤었다면 그때였을 거라고 믿는다. 나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특히, 우리는 12학년에서 마지막 학년인 13학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치던 시험이 있었는데, 그 시험으로 거의 대학입시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어 스트레스가 무시무시했다. 오히려 수능보다 더 진심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대학입시가 1년 남짓한 시간 안에 결정될 거라는 불안감이 온몸을 담그고 있었던 시절이다. 이렇게 길게 변명했으니 갑자기 2교시 수학 시간 정도에 뭔가 옆에서 나를 즐겁게 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을 만한 creature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이해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발전하여 3교시 영어 시간에는 그게 물고기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되었고, 4교시 물리 시간에는 물고기 종을 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오늘 방과 후에 물고기를 사러 갈 팸을 모집해서 팀이 꾸려졌다. 진짜 웃기지도 않아.
나름의 현실 가능성을 따져 보아 물고기, 그것도 혼자서도 외로움 없이 오히려 혼자만 살게 두어야 한다는 베타를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날 싫어하던 기숙사 사감의 눈에서 완벽히 물고기를 숨길 수 있다는 가정이 포함된 시나리오였다. 독방을 썼었고, 애완동물은 절대 금지였으며, 심지어는 평일에 앞 편의점 이상 나가는 것도 금지였던 곳이었다.
그런데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계획 수립부터 이행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정말 뿌듯한 일이다. 내 인생 중에서 가장 뿌듯한 성과 중 하나인데, 실제로 자기소개서 성과로 썼다가 1차 광속 탈락했다. 어쨌든 그렇게 물고기를 같이 사러 갔던 두 명과 함께 변변찮은 곳으로 갔더니 내일 들어온다기에 나간 김에 곱창이나 구워 먹고 아이스크림 빨며 택시를 타고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고기 냄새에 단번에 사감한테 나갔다 온 게 걸렸지만, 멋진 언변 술로 위기를 모면한 후 다음 날 또 나가서 결국 새하얀 베타를 데리고 왔다. 연핑크가 섞여 있었는데, 뭔가 진주 같기도 하고 이뻤다. 어제 그 팸과 함께 빙수를 먹으면서 이름은 종국이로 정해줬다. 김종국. 강하고 굳센 놈이 되라고. 곽두철 하려다가, 많이 참았다.
정말 놀랍게도, 종국이는 걸리지 않고 꼬박 일 년을 나와 함께 했다. 심지어는 내가 혼나서 기숙사에서 쫓겨났을 때도 종국이는 방에 남아 주변의 보호를 받으며 지냈다. 인생에서 순위권에 들 만큼 다이내믹했던 그 해에 묵묵히 함께하다가 드디어 대학교 합격 소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영화관 굿즈였던 길고 깊은 컵 안에 숨겨서. 이 글에 법을 어긴 일이 몇 개나 적힌 줄 모르겠다. 다들 흐린 눈 해주시길. 그렇게 나의 본가로 함께 온 종국이는 내 잘못으로 그다음 날 바로 죽었다. 엉엉 울었고, 지금도 슬프다. 그 얘긴 길게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종국이는 내 친구로 대학에 붙을 때 까지 나름의 최선을 다한 셈이다.
대단할 것 없이 행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종국이 입양 여정을 함께 했던 친구가 그때를 회상하며 새로 만나게 된 친구들에게 나를 그 일을 들어가며 소개했다고 얘기해주었는데, 그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스스로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어떻게 이 일이 현실에서 재생되었는가.
우선 더러운 방을 매일같이 치워주고, 빨래라도 해서 가져다주시는 메이트론 할머님할머님들이 몰랐을 없다. 항상 나한테 웃어주시면서 매일같이 모른척모른 척기를 숨겨주셨다. 내 호적 여부를 궁금해하며 - 당시에 잘못을 좀 해서 호적에 파일 위기에 처했었다 - 종국이에게 꼬박꼬박 밥을 주고 어항청어항 청소를 대신해주던도 있었다. 일단 당일에 물고기를 데리러 같이 가준 것 부터가 걔네들도 정상은 아니다. 장난 아니게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랬던 나날들을 다 뒤로하고 나는 점점 시간이 갈 수갈수록 엄청나지고 있다. 더 이상 기숙사에서 쫓겨날 만한 일 따위 하지 않고, 당장의 호기심과 결심에 많은 것을 걸지 않는다. 여전히 감정이 묻은 태도들이지만, 끝장을 보지는 않는다. 점점 현명하고 매력 없고 멋도 없지만없지만, 예의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게 좋은 일인가, 계속 의문이 든다는 거다. 죽을 둥 살 둥 쪽팔리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철 있는척 하려했더니, 스스로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너무너무 타이트해서 정신이 없다. 계속 달리고 있는 것처럼 긴장한다. 손 끝손끝까지로 힘이, 의지가 들어가는지 모르겠모르겠고, 다 떠나기엔 그나마 꾸려놓은 안정감을 뿌리칠 수가 없다.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
그날도 좋아하는 종국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펼쳐놓다가, 알고 지낸 오빠한테서 엄청난 말을 들었다. “오, 너도 키웠어? ~ 그 형도 방에서 햄스터 키웠잖어.”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세상은 심각하게 넓고, 나보다 이상하고 대책 없으며 간지나는 사람들도 되게 많다. 사실상 가장 이상해지자 다짐해도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나 안정감이란 쿠션으로 싸인 유복 100%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사방에 바늘이 있는 양 굴고 있다, 나 자신은. 용기 없는 용사가 되어 공주님만 구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야. 조금 더 현명해진 23살의 나는 당장에 물고기를 사러 가는 대신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어떻게든 되겠지. 물고기 대신에 햄스터를 사러 갈까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지 않은 데에서 나의 성장을 느낀다.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멋들어진 과정을 뽑아낼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든 반짝이는 엔딩을 맞이할 노력의 연료는 가지고 있다. 엔딩이 좋으면 다 좋기 마련이지. 얼렁뚱땅 보따리 싸듯이 싼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재미있게 여겨주기를. 앞으로의 삶의 엔딩이 좋은 곳으로 향하는 것이기를.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