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에 빨간 점 하나만 콕 찍어놓아도 그건 방향이 된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곳을 바라볼 때, 방향이 되고 나와 그 사이의 거리가 곧 길이가 된다. 그런 것이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 너무 많은 영향에 오히려 검정 도화지에 비슷해진 그것은 수많은 색색깔의 점이 찍혀 만들어진다. 한 점은 누군가에게는 더욱 짙게, 혹은 크게 찍히기도 한다. 그런 점과 점이 만나 우리의 선을 이루고 그 선에 또 세상은 세워진다. 엊그제, 우리는 너무 많은 점을 잃었다. 세상에 빛나게 찍혀 나가야 할 점들이 사라져 방향도, 거리감도 잃었다. 점이 없으니 선도 없고, 그 위에 만들어져야 할 세상은 갈피를 잃었다. 마음이 미어진다. 그날 약속을 취소했다는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이기심에 섬찟한다. 많은 다른 점들은 여전히 도화지 위에 존재하지만, 결코 예전과 같지는 못 하리라. 누군가에겐 조금 더 진했을 그 점들, 세상의 한 축이 되었을 점들에 안타깝고, 그 세상은 영영 만날 수 없겠구나 생각에 가슴깊게 아쉽다. 온 마음을 담아 애도합니다. 조심히 가시길. 그리고 안전하게 놀러 나갈 수 있는, 아무런 걱정 없이 집을 나설 수 있는 사회가 남은 점들의 노력으로 꼭 이룩되길. 간절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