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닮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몇 해째 되풀이되어 내려온 저주는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내가 그 말을 들었듯, 엄마도 그 말을 들었겠지.
그 탓에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미련곰탱이 같던 엄마에게서,
미련곰탱이 같은 딸이 나왔다.
사실, 그런 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배워왔기에, 그렇게 가르쳤다.
그랬기에 곰탱이가 둘이 되었다.
아프다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않던 곰탱이 딸이,
서툴게 처음으로 “아프다”라고 말했다.
아프다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서툰 대꾸가 나왔다.
“약 먹고 일찍 자.”
그 말은 마음속 깊은 후회로 남았다.
곰탱이 딸에게 생채기가 나듯,
엄마 곰에게도 깊은 구멍이 생겨버렸다.
‘그러지 말걸, 그러지 말걸.’
후회만 깊이, 깊이 남았다.
하지만 엄마는 모른다.
그 미련곰탱이 같던 엄마에게서 나는 미련곰탱이만 배우지 않았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실함도 함께 배웠기에, 나는 장애가 생겼어도 다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며 낭만을 즐기던 엄마를 보며,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낭만곰탱이 엄마에게서 작가곰탱이 딸이 태어나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너 닮은 자식 낳으라"는 말은 저주가 아니라 훈장이다.
나와는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알아서, 그 말은 속상해서 툭 튀어나왔겠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자신을 꼭 닮았을 내 자식에게 건넨 그 말은,
‘너는 나보다 낫다’는 자랑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