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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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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별 Aug 03. 2018

여름의 맛

냉보리차 한 잔의 기쁨!

덥다. 최근에 입에서 절로 나오는 말이다. 나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땀이 조금 나고 덥긴 하지만 뭐, 여름이니까 하는 생각에 별로 더위를 타지 않는다. 하지만 더위라는 녀석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이번 여름이 처음인 것 같다. 매일이 청양 고추 가득한 매콤한 불판 위에서 서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아이스크림이 되어 아스팔트 위에 녹아내리는 기분일지도. 


오로지 먹는 생각


덥다는 핑계로 나의 퇴근 후 저녁식사는 매우 가벼워졌다. 토마토나 아보카도 위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려 먹거나 냉곤약국수에 빠져있다. 실곤약을 얼음물에 담가 차갑게 만들고 일본에서 사 온 유자 간장에 식초를 조금 더하고 엄마가 보내주신 들기름 몇 방울이면 훌륭하다. 생존을 위해 계란 프라이를 하는 일을 제외하곤 뜨거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


바싹 일을 마치고 무더운 여름을 뚫고 신사동 뒷골목에 위치한 간판 없는 심야식당에 다녀왔다. 최근에 소셜 모임들이 유행이다. 얼마 전부터 관심 있게 보던 서비스였는데 재미있는 수업이 있어서 신청했다. 퇴근 시간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진행을 하시는 셰프님이 회사원이라는 점에 동질감을 느꼈다. 


한적한 길이었다. 너무 무더운 탓에 을지로의 밤도 귀찮아졌고 한강의 샴페인도 귀찮아졌다. 더위 때문에 좋은 건 삶이 담백해지고 불필요한 소금기가 빠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심야식당의 밤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시원한 하이볼 한잔으로 땀을 식혔다. 보통 마리아주란 말은 와인에서 많이 쓰이지만 나는 계절의 마리아주가 있다고 믿는다. 겨울에는 따듯한 꼬냑 한 잔으로 몸을 데우거나 소독 냄새가 강한 도수 높은 위스키를 마신다. 하지만 여름에는 신맛과 짠맛이 공존하는 괴즈나 사우어계열의 맥주가 생각난다. 그리고 샤워 후 마시는 하이볼 한잔이면! 캬. 



이렇게 하이볼 생각에 젖어들 때쯤 배추와 레몬, 간장으로 만드는 샐러드를 만들어주셨다. 개인적으로 샐러드는 올리브유에 소금, 후추만 넣어 먹는 것을 선호하기에 아삭아삭함이 밀려들어오는 샐러드였다. 그리고 여름의 채소들과 곤약, 돼지고기를 넣어 만드는 니쿠자가를 요리하셨다. 



니쿠자카를 보고 있으니 흰쌀밥과 곁들어 마실 맥주 한잔이 떠올랐다. 이때 맥주는 톡 쏘는 라거 스타일이면 좋을 듯하다. 맥주잔은 시원함을 더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얇은 글라스면 더욱 좋다. 얼마나 얇은지 실험해보지는 말자. 일본에서 친구가 이로 살짝 깨물었는데 와장창 깨져버려 민망했던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닭 가라아케는 큐민과 레몬을 섞어 튀겨 함께 먹는 조합이 너무 좋았다. 새콤한 레몬 튀김은 한여름밤 피부로 스미는 시원한 바람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감으로 대충 만드는 셰프님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요리를 즐겨하시는 엄마는 최근 방영하고 있는 <수미네 반찬>이 재밌다고 하신다. 


“엄마, 저거 다 만들 줄 알잖아? 근데 뭐가 재밌어?”

“대충 만들잖아, 그래서 공감되던데? 셰프들은 뭐 그리 그람수에 집착하는지... 난 그렇게 못해.”


요리사 대부분은 정량적으로 요리를 한다. 수치에 따른 요리는 마치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방금 재단된 A4용지의 모서리 같다. 쯔유 한 숟가락을 섞고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트려보고 맘에 드는 허브도 넣어보고- 나에게 요리가 재밌는 이유는 디자인과 비슷하다. 기본 공식은 있지만 결과물을 상상하면 된다. 어설프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과 여행을 하면서 모은 그릇들과 함께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그날의 행복한 마리아주를 꿈꾼다.


그림이 예뻐서 무작정 들어갔다.


더위를 뚫고 간 교토 출장에서 마신 냉보리차 한 잔은 2017년의 여름을 기억하게 해준다. 귀여운 포스터에 이끌려 혼자 전시를 보고는 맘에 드는 그림 앞에서 폭풍 질문을 했다. 한참 일어 공부를 할 때라 말도 안 되는 일어로 그림이 귀엽다, 한국에서 왔다, 다른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냐 등등의. 그때 내어주신 냉보리차 한 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들이 사라지게 해주는 한 잔이었다.


2018년의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무덥기만 여름으로 기억될까? 더위가 가시고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면 한 여름의 채소를 넣고 니쿠자가를 만들어 보려 한다. 흰쌀밥에 짭조름한 니쿠자가를 한입 하고 일본에서 사 온 위스키로 하이볼 한 잔을 만들어야겠다.



*흥미로운 수업이 많으니 참고하세요!


https://www.7pm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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