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5년 전쯤- 갓 막내 티를 벗어나고 있을 때 몰트 위스키란 걸 처음 마셔보았다. 소독약이 그윽한 이 맛에 빠져 세상은 나에게 호기심을 다시 심어주었다.
저 병은 무슨 맛이 날까?
나이가 많은 위스키는 더 맛있을까?
피트 향이 더 강한 위스키도 있을까?
디자인이 예쁜데 마셔볼까?
시가 향이 나는 어른들의 공간에서 처음 마셔보는 몰트 위스키 한잔이 아이의 눈을 갖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술을 코로 마시게 되는 날이 찾아왔다. 술의 향을 맡는 게 좋아지게 되었다. 애주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위스키 한 모금에 하루의 피곤을 덜 저버리고 그날의 대화를 곱씹어보고 울기도 웃기도 했다.
어른의 맛이란 게 존재할까?
처음 평양냉면을 먹던 날을 기억한다. 클라이언트와 충무로의 감리를 마치고 어느 평양냉면집으로 인도해 주셨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냉면에 소주를 마시고 계셨다. 어떻게 냉면에 소주를 마시지? 고춧가루가 올라간 이 맹숭맹숭한 맛을 왜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양은 음식에 양념을 적게 하여 맵거나 짜게 만들지 않고 담백함을 즐긴다고 한다. 이북이 고향인 외할머니의 음식은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그러나 칼칼한 맛이 있었다. 그런 외할머니 덕에 엄마의 요리도 양념을 거의 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음식을 하신다. 김치의 양념이 매우 적고 음식에 고명이 많이 올라가지 않지만 늘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평양냉면 이상한 녀석이다.
자꾸만 생각이 나게 한다. 햇빛이 나를 타들어가게 하는 날에도, 장마로 을지로의 길이 복잡할 때도, 발이 시린날에도 평양냉면이 자꾸 생각난다.
기본적으로 평양냉면의 육수는 사골뼈를 푹 끓이고 기본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반반 정도 섞어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육수에서 진하게 뿜어져 나오는 고기의 맛과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입안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매듭져준다. 겨울에 먹는 동치미가 제맛이라 그럴까? 여름에도 겨울에도 모두 잘 어울린다.
- 잘라드릴까요?
- 아니요!
평양냉면을 먹을 땐 가위로 자르거나 계란을 먹지 않는 공식이 있다. 평양냉면의 면은 메밀가루와 전분가루를 섞어서 만든다. 메밀의 함량 높아질수록 부드럽게 끊어지기 때문에 가위로 잘라먹지 않아도 된다. 노른자가 풀어지는건 평양냉면의 육수를 어지럽게 만들기때문에 사양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평양냉면 한 그릇과 제육 반 접시 그리고 소주 한 병.
육수를 만들 때 사태살을 넣고 삶기 때문에 편육으로 만들 수 있다.
어른의 맛을 조금 알게 된 걸까?
무거운 서류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의 맛을 알게 되는 건 씁쓸한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