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살을 찌우러 가기에 딱 좋은 도시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먹은 음식들을 생각하면 배가 고프다.
F&B 관련 브랜드를 만들고 식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공부하기에 최적의 나라 이기도하다.
오늘은 대표적인 식료품 마켓 두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식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가보았을 곳이지만.
1. 이탈리(EATLAY)
나는 뉴욕에서 이탈리 매장을 다녀왔지만 본 고장의 모습은 어떨지 너무 설레었다.
이탈리를 보고 뉴욕에서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에 약간은 긴장된 마음이었다.
이탈리(EATLAY)는 이탈리안 퀴진과 각종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그로서란트다. (그로서란트는 마켓(그로서리)과 레스토랑이 결합한 말이다.) 이탈리는 영어의 먹다(eat)와 이탈리아를 합친 말이다. 이탈리아 전역의 신선식품, 가공식품 등 식재료를 판매하면서 레스토랑과 정육점, 와인샵, 바 등등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매장은 물론 미국, 일본, 두바이, 터키까지 13개의 매장을 갖고 있고 판교 현대백화점에 첫 매장을 선보였다.
이탈리는 단순히 마켓 플레이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판매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탈리아의 음식문화를 브랜드화에 앞장서고 있다.
밀라노에 위치한 본점은 엄청난 규모였다. 식료품 백화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30개 정도 운영되기에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곳에서 반나절을 보낸듯하다.
엄마의 부탁으로 올리브 오일을 사러 갔다. 이탈리아어를 모르기도 하고 짧은 영어도 통하지 않기에 긴장 속에 찾아갔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너무 한눈에 보이는 정보 구성이 어렵지 않게 올리브 오일을 고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요리와 함께 먹으면 좋은지 사진과 그림으로 잘 구분되어있었다.
이탈리는 프리미엄 식료품 브랜드의 끝판왕이라고 느껴졌다. 제품의 생산부터, 가공, 유통까지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으며 직접 시식을 통해 음식재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관련 서적과 요리 도구까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Life is too short not to eat and drink well.
잘 먹고 마시지 않기엔 인생이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2. 팩(PECK)
두 번째로 방문 한 곳은 팩(Peck)
1883년 살라미 요리의 대가 프란체스코 팩(peck)이 상류층 미식가들을 위한 고급 식자료를 판매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문을 연 고메 마켓이다. 고메는 미식가란 뜻이다. 왕실에 식료품을 공급하면서 이탈리아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문화계 저명인사들과 정치인들의 사교장소였다. 이탈리아 식문화 품격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식품업계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로서란트 형태의 모델은 레스토랑과 식료품 가게로 나뉜 식품, 유통업계가 하나로 합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앞으로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팩은 이탈리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 방식, 상품이 진열된 구성이 조금 더 고급스러웠다. 고메 마켓으로 내 건 슬로건처럼 미식가를 위한 마켓 같았다. 잘 모르는 상품에 대해 질문할 땐 마치 18세기 귀족이 된 듯 자세한 설명을 옆에서 해주셔서 민망할 정도였다.
팩의 첫 경험을 기념하기 위해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하우스 화이트 와인과 아스파라거스 절임, 연어가 올라간 작은 타파스와 함께 휴식을 즐겼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와인 구경을 했다. 와인의 양이 방대해서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능숙한 소믈리에분이 나에게 붙어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데일리 와인 한 잔!
레스토랑은 소비자의 경험을 파는 곳이다. 셰프의 요리도 중요하지만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화이트 와인 한잔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두 곳의 이탈리아 식문화 탐방을 마치고 두오모에 들렸다.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와 함께 또 한 번 미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조금은 지친 마음이어서 머리를 맑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 실비아, 쉬어 갈 땐 캄파리야. 근데 이거 한 번에 다 마셔야 해”
캄파리는 약용으로 쓰이는 비터에서 시작되었다. 캄파리 바를 만든 사람은 가르파레 캄파리로 14살부터 바텐더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브랜드 이름이 없던 캄파리를 두오모 앞에서 팔기 시작했고 테스트를 거친 캄파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1860년 회사를 설립하였고 아들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공시켰다.
캄파리 한 모금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씁쓸한 캄파리와 소다수가 어울려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약"같은 술이었다.
100년, 200년이 훌쩍 넘은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이들이 매력은 무엇일까?
이런 브랜드를 나는 만들 수 있을까?
쉬어갈 땐 캄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