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에 정말 관심이 많다.
요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쁜 그릇에 담아 친구들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 영향 때문인지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 갈 때 도시를 기념하는 자석을 모으지만 나는 그 나라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기 위해 그릇을 산다. 핀란드에서는 이딸라를 샀고 스웨덴에서는 아르텍을, 도쿄에서는 아즈마야를 샀다. 꼭 브랜드가 아니어도 편집샵에 들려 마음에 드는 그릇을 사곤 한다.
밀라노에서 보내는 토요일 점심엔 한국에서 왔다는 나를 위해 이탈리아 친구들이 모였다. 이탈리아 친구 집은 내가 가본 집들 중에서 가장 예뻤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내가 너무 갖고 싶은 바실리 체어와 빈티지한 그림들, 작은 석고상들, 서핑보드와 책들이 조화를 이룬 집이었다.
역시나 늦은 점심이 되어 친구들이 도착했다. 박스를 들고 나타난 나탈리 때문에 대체 뭘 들고 왔는지 궁금했다. 박스 안을 살펴보니 작은 미니화분이 있었다. 바질이었다.
“나탈리, 이거 키우려고 가져온 거야?”
“킥킥킥… 아니, 이걸로 페스토 만들 거야!”
그렇다. 직접 바질 잎을 따서 페스토를 만든다고 했다. 페스토(pesto)는 바질을 갈아 올리브 오일과 치즈, 잣을 갈아 만든 이탈리아의 소스이다. 파스타나 생선, 육류 등 다양한 요리에 쓰이는데 토마토소스와 함께 이탈리아 요리를 대표하는 소스이다. 바질은 따듯하고 온화한 기후에 잘 자라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잘 맞는 허브인 것 같다.
피자에 이어 직접 페스토를 만든 건 처음이라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먼저 바질 잎을 한 잎씩 딴다. 이때 바질 잎을 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다. 와인을 마시면서 수다가 시작이 된다. 이탈리어는 잘 모르지만 사소한 걸로 기본 두세 시간을 떠드는 사람들이기에 익숙했다. 바질 잎을 딴 후 잣을 넣고 간 후 치즈가루를 넣는다. 여기에 신선한 올리브 오일까지 넣어 갈아주면 끝! 정말 쉽게 만들 수 있기때문에 서울에 돌아와서도 자주 해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생 허브를 사기가 싶지 않다.
페스토는 삶아진 면에 드레싱을 뿌리듯 먹는 것이 전통 방식이다. 우리는 푸실리를 삶았다. 어머니가 물려주셨다는 그릇을 보니 식탁을 통째로 한국으로 옮겨가고 싶었다. 조금은 낡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냈을 시간을 생각하면 따듯함이 느껴지는 은식기 위에 정성스럽게 만든 바질 파스타가 두배로 맛있게 느껴졌다. 마르코가 사 온 샴페인을 시작으로 레드와인까지 길고 긴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은 뒤 우리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르또를 한잔씩 마셨다. 이탈리아에는 3개의 유명한 식후주가 있는데 그라파와 리몬첼로. 그리고 이 미르또가 있다. 항상 밥을 먹고 난 다음이면 이 미르또를 한잔씩 마셨다. 세르데냐라라는 섬에서 자란 블루베리과의 과일로 만든 술이다.
밀라노에 지내면서 그리고 이탈리아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수록 나랑 잘 맞는 도시란 게 느껴졌다. 너무 상업적인 뉴욕에서는 속이 매스꺼워졌고 같은 아시아이지만 배울게 많은 도쿄는 뭔가 다가서기엔 여전히 낯설다. 가장 살고 싶은 도시는 베를린이지만 베를린 특유의 회색빛이 감도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의 열정과 선명한 색, 그리고 남들에게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이 강한 나라이기에 음식도, 패션도, 예술도 고유의 색이 있다.
예전에는 너무 강한 이탈리아 디자인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이 좋았고 블랙 앤 화이트가 최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멤피스를 좋아하는 덕후가 되었다.
멤피스 디자인 그룹 : 모더니즘과 상업주의적 디자인에 반발과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표현에 대한 저항으로 1970년대 말 이탈리아 산업 디자이너들에 의해 결성된 디자인 그룹이다.
과감한 색과 과감한 디자인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면 나도 조금은 선명한 색을 갖은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조금 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다음 생애엔 밀라노 사람으로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