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머니가 서울분이어서 자주 서울에 왔지만 그래도 태생은 시골이다.
이 지긋지긋한 서울에서 11년이나 살았다니....
첫 서울살이의 시작은 공릉동. 학교 앞에서 기숙사와 자취를 포함해 4년, 두 번째 서울 살이는 분당. 율동공원이 가까워서 운동하기 좋았다. 그곳에서 다시 4년, 그리고 대학로에서 2년-지금은 잠실에서 1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을지로의 빨간 맛과 파란 맛을 알게 된 건 대학로에 살 때부터였다.
나의 20대 놀이터는 이태원과 한남동 주변이었다. 이태원의 역사를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구석구석 어디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만의 이태원이 모두의 이태원이 되면서 갈 곳을 잃은 어린양이 되었다.
대학로에 살면서 이태원보다는 종종 가까운 궁 산책을 하게 되었다.(당시 집에서 15분 거리)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걷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지역 맛집은 뭐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 을지로인데요, 여기서 뭐 먹어야 해요?
처음 을지로의 맛을 알게 된 건 10년 윗 선배가 데려간 을지로 4가의 아바이 순대. 하지만 이 집은 방송을 타면서 사장님께서 밀려들어오는 사람을 감당하지 못해 2016년 폐업을 하고 말았다. 처음엔 모든 것들이 어색하고 불편했던 적이 있다.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소주를 마시고 있으니 아저씨들의 보내는 눈길이 감사했다. 특히 화장실은 기대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그렇게 불편함이 익숙해지면서 스물스물 을지로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을지로의 파란 맛
을지로의 진정한 매력은 노상 까기이다.
노상의 뜻을 찾아보면 사실 길바닥이란 뜻이지만 부사로서의 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한 모양으로 줄 곳이란 뜻을 갖고 있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해석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한 모양으로 줄 곧 길 위에서 술을 먹는다.
이 노상 까기를 하기 위해서는 테이블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 해야 한다. 요즘 처럼 여름이 밀려들어올 때 하늘을 바라보면서 먹는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80세가 넘은 할머니는 여전히 전을 붙이시고 노가리와 시원한 맥주를 마셔도 만원이 넘지 않는다. 대를 이어 아들이 돼지갈비를 굽고 음악이란 꿈 하나로 허기를 달래던 뮤지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을지로인 것이다.
그래서 을지로 길 위에서는 파란맛을 느낄 수 있다.
을지로의 빨간 맛
최근 을지로가 활기를 띄기 시작한 건 sns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좋은 까닭에 을지로에 자주 가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근데 이 맥주 맛... 정말 남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금세 소비가 되서일까? 엄청 신선하다.
을지로는 나이 든 세대만 갈 것이란 편견이 점점 깨지면서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50년, 70년을 훌쩍 넘은 가게들도 많지만 최근에 생긴 신생 가게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런 게 특이하게도 신생 가게들은 빨간 조명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생 가게들의 약속인 것처럼 조명이 모두 빨갛다.
소주가 어울리는 을지로에 와인이, 수입 맥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이방인들이 언제까지 수명을 다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오래 빨간 맛이 지속되길 바란다.
을지로의 반짝이는 맛
몇 년 사이 을지로에 젊은이들이 모이면서 소위 “핫”플레이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밀려나 생긴 신도시를 시작으로 얼마 전 방문한 감각의 제국은 정말 날것의 냄새가 강한 곳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모인 이곳은 좋은 가구라던지 디자이너 조명 따윈 없다. 키치함이 가득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서 춤을 추면 일주일의 스트레스는 안녕이다. 어떻게 춤을 추든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사람과 왔는지 중요하지 않는다.
오로지 반짝거리는 나만 있을 뿐이다.
곧 장마가 시작이란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을지로의 맛들이 내 코를 자극한다.
오늘도 나는 을지로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