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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별 Nov 07. 2018

#6. 마운틴 후드로 가는 길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아

캠핑을 시작한 건 사회생활을 하고 3년 쯔음이 됐을 때였다. 나 역시 3년 차에 문득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늘어져 있었다. 퇴근 후 홀로 와인 한 잔에 “인투 더 와일드”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이거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인 투더 와일드>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악 커플로 산에 가거나 클라이밍을 하는 데이트를 즐기셨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캠핑을 다니는 게 익숙했다.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수영을 하고 삼겹살을 먹고 텐트에서 자는 초록빛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The core of man’s spirit comes from new experiences.

사람의 정신의 본질은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온다.

영화 <인 투더 와일드> 중에서-


영화를 본 다음 날부터 나의 가방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캠핑을 하면서 삶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로 캠핑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파타고니아 같은 좋은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자연을 생각해야 함은 물론 도전정신을 기르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들과 도전정신이 나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캠핑을 하면서 삶을 배웠다.


그래서 포틀랜드에서 꼭 해보고 싶은 리스트가 있다면 캠핑이었다. 포틀랜드는 예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주변의 강과 해안, 산과 숲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포틀랜드에 사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캠핑할 수 있을까? 장비가 없다면 들고 갈게.”

누구에게 부탁을 한다는 게 어려웠지만 포틀랜드에서 캠핑은 꼭 하고 싶었다.


“우리 여기서 캠핑하자”


난 그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너무 아름 더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포틀랜드에서 캠핑이라니!


우리의 목적지는 마운틴 후드가 보이는 트릴리엄 호수. 마운틴 후드는 신비로운 만년설을 갖고 있어 스키나 하이킹 명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오리건주의 대부분 차 표지판도 마운틴 후드를 배경으로 만들어져있더. 포틀랜드 시내에서 트릴리엄 호수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우리는 중간중간 몇몇 장소를 들리기로 했다.


“천천히 가지 뭐, 느리게 가도 괜찮아.”


컬럼비아 강 협곡을 따라 미국에서 2번째로 긴 폭포인 멀트노마 폭포에 들렸다. 오리건주는 캐나다와 가깝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도 여행을 많이 온다고 한다. 시원한 물줄기가 서울에서의 답답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었다.

오리건 주는 피노누아로 유명하기 때문에 중간에 와이너리도 방문했다. 4가지 와인 테이스팅을 친절하게 도와주시던 할아버지가 그립다. 햇빛은 따스했고 하늘은 아름다웠고 내가 포틀랜드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벅차올랐다.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의 삶이 생각나지 않았다. 온전히 햇빛을 받아들였고 느린 시간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마운틴 후드를 보며 따라가는 길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순간에 감사했다. 마운틴 후드가 가까워질 때마다 마음은 뜨거워졌다.

재빠르게 텐트를 쳤다.

친구가 미리 캠핑장 예약을 한 덕택에 무사히 하루를 지낼 곳에 도착했다. 나무 숲 한가운데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재빠르게 텐트를 치고 트릴리엄 호숫가로 갔다.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캠핑장은 생각보다 커서 한참을 걸어갔다. 고요했고 고요했다. 조용한 길을 따라 숨겨져 있는 캠핑 트레일러나 캠핑용 트럭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 마침내 마운틴 후드 아래 잔잔히 흐르는 호수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마운틴 후드 아래 나는 있었다.

“너무 예쁘다…"

나는 한마디를 조용히 읊조리고 풍경을 감상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평화로웠다. 글로도 옮겨지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에서의 삶은 빠르게 돌아갔다. 늘 분주했고 별것도 아닌 일에 바빴고 남들은 모르는 혼자만의 경쟁 속에 살아야 했다. 때로는 목표를 잃어버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늘 고민했고 우울했던 시기도 있었다. 친구를 잃어버렸고 가족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어느덧 30대가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괜찮아, 조금 느리게 가도 되니까”

왜 남들의 속도에 나를 맞춰야 했을까? 왜 남들의 인생과 나를 비교하며 살았을까? 이제야 내게 맞는 속도를 찾은 2018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느리게 살아가는- 자신만의 삶을 사는 포틀랜드 사람들이 부러웠다. 숭어낚시를 즐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비큐를 즐기던 가족, 카누를 타면서 호수를 즐기는 사람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행복은 나눌 때 현실이 된다.

영화 <인 투더 와일드> 중에서-


홀푸드에서 사 온 바비큐와 샐러드, 그리고 와인과 맥주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재즈를 들으며 카드게임도 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몸을 녹이고 밤하늘을 보았다. 별들이 가득했다.


언제나 반짝이는 사람이 되자.

새로운 경험으로 반짝거리는 인생을 살자.


인생은 자기 만의 속도가 있다. 200km로 달리던 내 인생 속도는 사고도 있었고 위험도 있었다. 갑자기 급 정지를 할 때도 있었고 딱지도 떼였다. 혼자 달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같기 달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속도로 오래가려고 한다. 그게 20km인지, 100km인지는 나만 알고 있다.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


그때의 감동은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어서 글로 전달이 잘 안된다. 너무 아름다운 하루였다.


마운틴 후드로 가는 길,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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