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滓)의 환생

by 이승재

담배 원통 깊숙이 찬 공기가 빨려 들어간다

빨간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애벌레가 벗어 놓은 껍질처럼 재가 남고

나비의 궤적을 그리며 연기가 대기 속으로 날아간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의 직각이 위태롭게 봄볕을 반사하며

아스팔트 밑 대지를 응시한다

한 때는 조급했고 그 만큼 선명했을 눈동자

흐릿한 윤곽에 새겨진 그늘은 기다림이려나


미간에 수평의 주름을 새긴 여인이 가슴을 부여잡고

성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분주하게 교차하는 시선을 헤치며

벗어나야 할 시간을 지나 또 다시 벗어나야 할 시간을 향해


꿈이 있어서 슬펐다*, 생각을 태우며

저마다의 몫으로 열熱이 방사된다

힘들이지 않아도, 겨울을 지나 봄이 오듯이

서둘러 삶을 소진한 생生이 그렇게 시간에 떠내려간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폐肺를 대지에 묻는 날

꿈이 없는 생生을 꿈꾸게 되리



* 염승숙의 단편소설 "습"에 나온 문장 '꿈을 꾸면 슬퍼진다' 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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