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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pers Summit Jun 20. 2020

백 일의 고독

베고니아, 그리고 리젠트 파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작, “백 년의 고독”은 마콘도 지역에 뿌리를 내린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야기다. 가장 위대한 소설 10선에 꼭 선정되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베고니아. 


3대손이 바뀌는 동안 변치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테라스에 나란히 심어져 있는 베고니아다. 나는 베고니아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지만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며 상상했다. 그리고 며칠 전, 영국 리젠트 파크를 방문했다. 베고니아를 심고 있는 왕립 공원 정원사를 만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베고니아의 강렬한 붉은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수석 정원사는  “뱀파이어의 침실"이라는 테마로 한 작업이라고 했다. 


삐죽삐죽 거대한 잎 자체가 부채를 연상시키는 알로카시아는 멋졌다.  굵은 목대가 위로 뻗은 줄기에서 큰 거북등 잎이 자라는 나무 알로카시아.  코로나로 인한 이번 영국의 록다운 동안 알로카시아의 온라인 주문은 크게 늘었다고 한다. 다들 방 안에서 많이 외로웠고 밖이 그리웠나 보다. 실제로 친한 친구도 이 화분을 구입했고, 닥터 테드로 [1]라 이름을 붙였다. 공원에서 알로카시아 잎과 같은 색이지만 베고니아 높이의 작은 모종도 낮게 심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정원사에게 어떤 “희귀 식물”인지 물어보니 ‘고구마’란다.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잡고 영상 인터뷰를 했다. 수석 정원사 마틴 무어 씨는 1992년 수습생으로 시작했고 2006년부터는 리젠트 공원의 동쪽을 맡고 있다. 이 동쪽 공원에는 강아지들이 유일하게 출입을 못하는 경건한 잉글리시 가든이 있다. 영국 정원과 프랑스 정원 양식을 교묘하게 배합한 이 곳은 리젠트 파크 내에서도 좀 더 격식을 갖춘 멋을 낸 정원이다.


정원의 역사에서 영국과 프랑스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영국은 “자연적인 가든"이라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작은 개울과, 경사 등은 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영국 정원은 영화 “노팅힐”에 살짝 나오는 ‘켄우드 하우스’에서 시작됐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 프랑스를 상징하듯, 프랑스는 좌우 대칭을 통한 인위적인 미를 추구했다.


이 베고니아, 알로카시아, 보라색 잎이 섞여 어우러져 있는 이 정원의 공식 이름은 ‘왕립 공원 리젠트파크의 잉글리시 가든’이다. 그리핀 형상의 석조 화분들이 눈에 띈 이 곳은 자연스럽지만 대칭을 강조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번 ‘뱀파이어의 침실’ 테마는 현재 약 5주간에 걸쳐 작업 중이며, 강렬한 색과 화려한 반전이 있는 빅토리아 시대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 때 프랑스와 영국의 공통점은 많은 식민지로부터 다양하고 희귀한 꽃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고, 정원에 얼마나 화려한, 희귀한, 독특한 식물을 전시하느냐가 부의 척도였다. 우리 집 마당 앞 파인애플 트리가 지금의 포르셰 카이옌을 주차해놓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넓은 화단은 정원사의  상상력을 옮겨 놓는 거대한 캔버스였다. 정원사들은 더 멋진 식물을 채집하러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앞서 사진의 대형 그리핀 석조 화분 위에 푹신해 보이는 베고니아 침대 가운데 야자수가 솟아 있는 작품은  “식물 사냥꾼/채집자" 였던 로버트 포춘경의 이름을 따 트라이 카 퍼스 포추니아 (Trachycarpus Fortunei)라고 불렀다.


록다운 덕분에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공원을 조깅하면서 나는 색의 향연을 즐겼다.



100일간의 고독



3월에는 매화의 현란하면서도 경건한 색조의 구름 속에 간혹 얼굴을 내미는 다포딜의 해맑은 노랑. 4월은 튤립의 세상이었다. 그 이름 뒤에 감추어진 “튤립 파동” 이란 역사 속의 슬픈 이야기[2]  


오스만 제국이  튤립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는 그 당시 옷의 문양이나 그림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상인에 의해 유럽 각지에 전해졌고 튤립은 ‘부'를 상징하게 되었다. 영국은 전 세계에  “Plant Hunter”를 보내서 사냥에 나선다. 이들이 들여온 야자수, 파인애플 등 희귀 식물은 “그린하우스"에서 재배되며 사시사철 다양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부의 상징이었다. 4월 22일, 다포딜은 사라졌고, 오솔길 양 옆에는 이름 모를 하얀 들풀로 채워져 있었다. 


5월 중순, 매일 장미를 확인을 하러 갔다. “퀸 메리 로즈가든"이라고 여왕의 장미의 정원인데(리젠트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몇몇 정원은 왕실 소유로 로열파크에 속한다) 각 장미 종류만 해도 100개가 넘는 것 같다. 



미네르바 장미



영국의 조경 사업은 규모가 엄청나다. 37만 명의 종사자가 년간 126억 파운드의 경제가치 (약 19조 원)를 창출한다. 그 규모는 “회계 관련 직종"과  비슷하며, 영국 총 GDP의 1.2프로라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3]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지만, 첼시 플라워 쇼가 열릴 때면 전 세계에서 정원 쇼를 보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작은 꽃모종을 파는 화원을 “널서리”라부르는데, 유아원과 같은 단어다. 어쩜 귀한 씨앗들이 ‘독립’ 할 때 까지기에 이해가 간다.





궁금해져서 대영도서관 원서들을 찾아보니, 해외에서 가져오는 식물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인도 도시 아그라에서 가져오는 “아르메니아” 종에 대한 트레멘히레 선장 (Captain Tremenheere)의 편지도 찾았다. 


진화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찰스 다윈의 이야기 생각난다. 그는, 에든버러 의대 실패하고, 1827년 마지못해 성공회 신부가 되라는 아버지 뜻을 따르기 위해 캠브릿지 대학 신학과에 입학했지만 신학은 뒷전, 식물채집에 더 관심을 가지다. 그러다가 1836년 2월 10일까지 약 5년 동안 비글호에 승선하게 되었고, 자연사 수집물을 수집하면서 보냈고 그 항해가 훗날 종의 기원 (1859)에 영향을 끼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3개월의 럭 다운은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하루에 한 번 조깅하며 만나던 자연 속, 수많은 배움이 있었다. <장미의 이름>에서 읽었던 다양한 약초, 해리포터에서 묘사되는 사람을 닮은 맨드레이크 뿌리, 우리의 그림에서 수묵화로 표현되는 매화와 칠월 국화 등 나누고 싶은 그림이 많지만 일단 여기까지 하고, 마지막으로 얀 반 호이 섬 (Jan van Huysum)의 1726년 <화병의 꽃들>으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Jan van Huysum- 화병의 꽃들 (출처 : Wallace Collection)



잎과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각 꽃잎의 질감, 깊은 색감, 움직임을 보라. 사과꽃, 튤립, 이란에서 온다는 크라운 임페리얼 꽃, 양귀비까지 한 시간에 볼 수 없는 다양한 철의 꽃을 모아놨다. 그 안의 물방울부터 꽃에 유혹된 나비까지 마법적인 리얼리즘으로 그려져 있다. 사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 의미는 더 강하였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이 꽃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피는 꽃들이기 때문에 실제로 가능했건 그림이기에 가능했건 마법 같다. 매직 리얼리즘 소설의 창시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책을 “백 년의 고독”을 다시 읽어야겠다. 


  



김승민 큐레이터, 슬리퍼스 써밋







[1] WHO 사무총장 

[2]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현상. 네덜란드 황금시대 중 새롭게 소개되었던 튤립 구근이 너무 높은 계약 가격으로 팔리다가 급락했던 상황. 

[3] https://www.prospectmagazine.co.uk/magazine/history-of-gardening-politics-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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